군위 인각사 석불좌상
정의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인각사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1]
내용
원래 석불좌상은 인각사 괴산1리에 있던 것을 옮겨 온 것이며 주재료는 사암이다. 전체 높이 약 153㎝, 불두 높이 약 53.5㎝, 어깨 폭 약 64㎝, 무릎 폭 약 97.5㎝이다. -두산
신체표현이나 의습선의 표현, 상호 표현 등 모든 면에서 부드럽게 처리하였다. 머리의 육계는 크고 높지만 거의 머리 크기와 비슷하며, 큼직한 나발이 머리 전체에 조각되었다. 상호는 전체적으로 통통하고 둥글한 윤곽에 눈코입이 작게 표현되었으며, 특히 입이 작고 양 끝이 움푹하게 들어가 있어서 뺨이 더 통통하게 보인다. 양 귓불은 길게 늘어져 어깨까지 닿아 있다.
이 불상은 항마촉지인과 선정인의 수인을 취했는데, 특히 선정인의 수인 위에 작은 지물이 있는 것으로 보여 약사불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불의(佛衣)는 양 어깨를 덮고 있는 통견이며, 오른쪽 어깨에서 내려진 대의가 배 앞에서 접혔다가 오른손 옆으로 내려진 것으로 보아 이중착의법일 가능성이 높다. 옷주름이 대의 전체에 골고루 표현되었으며, 의습선은 선각으로 같은 간격을 유지하며 부드러운 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런 의습선은 영양 연당동 석불좌상(889년)이나 경북대학교 소장 비로자나불상, 홍천 물걸리 석불좌상 등과 유사하다. 가슴 앞에는 승각기와 띠매듭이 표현되어 있다. 광배는 파손되어 정확한 형태와 세부 조각은 알 수 없으나, 주형거신광배의 형태이다.
불상 신체의 양감이 표현되지 않은 점, 경직된 어깨, 높고 짧은 양 무릎, 옷 전체에 등간격으로 음각된 의습선 등으로 보아 양 무릎에 의습선을 표현하지 않거나 신체의 양감이 풍부하게 표현된 9세기의 불상과는 다르며, 또한 상호와 신체 등이 큼직하게 표현되기 시작한 고려의 불상과도 달라 10세기경의 불상으로 편년된다. -민백
불신과 배(舟)처럼 생긴 광배를 하나의 돌에 양각하였다. 머리카락은 굵은 소라처럼 생겼고 그 위로 큰 머리묶음이 상투처럼 생겼으며 귀는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입술은 두껍고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으며 목에 있는 굵은 삼도(三道)가 주름을 나타냈다. -두산
양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평행된 옷주름이 촘촘하게 물 흐르듯 새겨져 있으며, U자형으로 넓게 트인 가슴에는 속옷과 띠매듭이 드러나고 있다. 무릎사이의 부채꼴 모양으로 넓게 퍼진 옷주름은 양팔뚝을 감싸고 흘러내린 대의(大衣)의 주름과 겹쳐져 무릎 부근에서 크게 3단의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손 모양은 오른손으로 촉지인(觸地印)을 취하고 있고, 왼손으로 선정인(禪定印)을 취하였으며, 손 위에는 조그마한 보주(寶珠)를 올려 놓았다. -문화
불상의 조각기법을 미루어 볼 때 제작시기가 10세기에서 11세기 사이일 것으로 짐작된다. 불상 양식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하게 이용될 수 있다. 2002년 8월 19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9호로 지정되었다. - 두산백과
불상은 불신과 배(舟) 모양의 광배가 하나의 돌에 조각되어 있다. 머리에는 굵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로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큼직하게 솟아 있다. 적당히 살이 오른 얼굴은 원만한 인상이며, 두툼하게 처리한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흐르고 있다. 특히 뺨을 솟아나게 처리하고 눈두덩을 불룩하게 처리한 데 비해 코와 입을 작게 하고 귀를 길게 처리한 점 등을 볼 때 잘 묘사된 불상이다. 목에는 3개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표현되었다. -두산
이 불상은 조각수법으로 볼 때 10세기에서 11세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이 시기의 불상양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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