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보현사
Encyves Wiki
강릉 보현사 (江陵 普賢寺) |
|
대표명칭 | 강릉 보현사 |
---|---|
한자 | 江陵 普賢寺 |
주소 |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현길 396 |
건립시기 | 신라시대 |
창건자 | 자장 |
경내문화재 |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비,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 강릉 보현사 대웅전, 강릉 보현사 목조보살좌상 |
|
정의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만월산(滿月山)에 있는 절.[1]
내용
보현사(普賢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月精寺)말사이다. 보현사는 650년(진덕여왕 4년)에 자장율사(慈藏律師)에 의해 창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기록이 없어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2]
===또 다른 창건설=== 보현사의 창건에는 두 가지 설이 전래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신라시대 불교의 4대보살 가운데 한분인 보현보살이 직접 창건하였다는 설이다. 보현보살의 창건설은 매우 전설적인 성격이 짙다. 보현보살 창건설은 어느 날 인도에서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 강릉의 동남쪽 남항진 해변에 당도하여 문수사(文殊寺, 지금의 한송사지)를 세웠는데, 이 때 보현보살은 “한 절에 두 보살이 함께 있을 필요가 없으니, 내가 활로 쏘아 화살이 떨어진 곳을 절터로 삼아 떠나겠다.”라고 말하며 시위를 당기니 보현사 터에 화살이 떨어졌으므로 이 절을 창건했다는 설화가 전하여 온다. 이처럼 보현사는 한송사와 함께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설화는 『동문선(東文選)』제71권에 실린 이곡(李穀)의 「동유기(東遊記)」에서 사람들이 문수와 보현이 땅 속에서 솟아나온 것이라 한 기록과 관련 된다.[3]
보현사가 사찰의 모습을 갖추고 번창한 것은 889년(진선여왕3년) 낭원대사(朗圓大師)에 의해 중창되어 지장선원(地藏禪院)이라 이름을 바꾸면서다.[4] 현재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세운 것이다.[5]
동영상
- 김윤기, "강릉 보현사", YouTube, 게시일: 2016년 12월 6일. 2017년 5월 12일 확인.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650년 | 자장에 의해 창건되었다. |
889년 | 개청에 의해 중창되어 지장선원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
개청은 보현사에서 주석하였다. | |
930년 | 보현사에서 개청이 입적하였다. |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비 | 강릉 보현사 | A는 B에 있다 | |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 | 강릉 보현사 | A는 B에 있다 | |
강릉 보현사 대웅전 | 강릉 보현사 | A는 B에 있다 | |
강릉 보현사 목조보살좌상 | 강릉 보현사 | A는 B에 있다 | |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비 | 개청 | A는 B를 위한 비이다 | |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비 | 최언위 | A는 B가 비문을 지었다 | |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비 | 구족달 | A는 B가 비문을 썼다 | |
개청 | 강릉 보현사 |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 |
강릉 보현사 | 평창 월정사 | A는 B의 말사이다 |
참고문헌
- 김위석, "보현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보현사(강릉)",
『대한민국구석구석』online , 한국관광공사. - "보현사",
『보현사홈페이지』online , 보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