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합총서
규합총서 | |
한자명칭 | 閨閤叢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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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he book of knowhow and tips of housekeeping written by Bingheogak Yi (1757~1824). |
작자 | 빙허각 이씨 |
작성시기 | 1809년 |
간행시기 | 1869년 |
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25.0×16.0㎝ |
판본 | 목판본 |
수량 | 1책 |
표기문자 | 한글 |
정의
빙허각이씨(憑虛閣李氏, 1757~1824)의 『빙허각전서(憑虛閣全書)』 중 제1부작으로서 각종 가정 살림에 관한 지혜를 엮은 책이다.
내용
빙허각이씨(憑虛閣李氏, 1757~1824)의 『빙허각전서(憑虛閣全書)』 중 제1부작으로서 각종 가정 살림에 관한 지혜를 엮은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모두가 잘살기 위한 급선무요, 살림하는 요법이다. 진실로 일용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요, 부녀가 마땅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일상생활에서 요긴한 생활의 슬기를 적어 모았는데, 술과 장을 담그는 법과 음식 만드는 법 그리고 염색과 세탁에 관한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실려 있다. 『규합총서』는 모든 내용을 자세하고 분명하게 서술했을 뿐 아니라, 참고한 책의 이름까지 작은 글씨로 표기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추가하며 덧붙인 뒤, 각 항목의 끝에 자신이 직접 실행하고 확인한 결과 등을 기록해 놓았다. [1]
부연설명
빙허각이씨와 규합총서 저술배경
빙허각이씨의 아버지는 이창수(李昌壽,1710-1777)이고 어머니 문화유씨는 유한규의 여동생이다. 유한규의 아내이자 『태교신기언해』를 저술한 사주당이씨는 빙허각이씨의 외숙모가 된다. 빙허각이씨가 지은 글 중에 『태교신기언해』의 발문이 남아있을 정도로 둘의 관계는 각별했다. 빙허각이씨는 15살에 서유본에게 시집을 갔다. 서유본의 『좌소신안집』에서 보면 빙허각이씨가 『규합총서』을 편찬하는 상황에 대해 읊고 있는 시가 있다. 이 시를 보면 서유본이 『규합총서』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음을 알 수 있다.[2] '규합(閨閤)'은 여성이나 여성이 머무는 거처라는 뜻이고 '총서(叢書)'는 여러 책의 내용을 골라 엮었다는 뜻이다.[3]
빙허각이씨가 살았던 18~19세기는 청에서 고증학과 서학이 유입되고 실학이 생겨나는 학술적인 변화를 겪은 시기였다. 당시 지식인들은 새로운 지식을 정리하거나 조선의 실정에 맞게 바꾸어 다양한 서적을 편찬했다. 그녀의 남편 서유본이 집안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서유본의 아버지 서호수는 두차례 북경을 다녀와 『고금도서집성』으 구입했고, 집안에 다양의 도서를 소장하였다. 남편을 비롯한 서씨집안의 사람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 실학사상을 근거로 학문활동을 하였고, 이는 빙허각이씨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빙허각이씨는 서유본의 동생 서유구의 교육을 맡을 정도로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 남편 서유본의 큰아버지 서형수가 1806년에 유배를 당하면서 집안이 기울었다. 빙허각이씨는 이때 밭을 직접 일구기까지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빙허각이씨는 이때 많은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길 희망하며 일상생활의 슬기를 모아 『규합총서』을 저술하였다. 당시에도 유명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필사되었다. 서유본의 동생 서유구가 쓴 『풍석전집(楓石全集)』에 있는 빙허각의 묘지명에 "… 빙허각 시집 1권, 『규합총서』 8권, 『청규박물지(淸閨博物志)』5권이 있다. 『규합총서』은 빙허각이 살아있을 때에도 이미 세상에 알려저 인척이 자주 베껴갔다"라고 쓰여있다.[4]
규합총서의 내용과 특징
『규합총서』의 내용적 특징은 인용한 내용에 대해 고증하여 밝히거나 주의점을 경계하는 등의 실학적 서술을 했다는 것이다. 또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석을 붙이거나 이름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26> 「주사의」에서 술과 음식의 종류, 조리법과 유래 등을, 「봉임측」에서는 바느질, 염색, 수선법, 여성장식 등을 수록했다. 「산가락」은 밭을 일구는법, 채소와 과일, 꽃 등을 가꾸는 법, 「청낭결」은 태교, 육아, 구급의학 등, 「술수략」은 장소의 방향 선정, 귀신과 전염병을 막는 방법 등의 풍속을 수록하였다. 관념적인 내용과 함께 일상생활의 문제도 다룬 실용적인 내용의 책이다. [5]
언제 누가 지었는지 모르는 필사본 또는 목판본으로 전해지다가 1939년 황해도에서 달성서씨 후손의 집에서 3부 11책으로 된 『빙허각전서』가 발견되었고 『규합총서』는 제 1부였다. 그러나 일제감정기, 6.25 전쟁 등을 겪으면서 사라졌다. 현재 목판본은 서울대학교 가람문고본과 국립중앙박물관본이, 필사본은 정양완소장본 등이 전해지고 있다. [6]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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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허각이씨 | 규합총서 | A는 B를 저술하였다 | 1809년 |
이창수 | 빙허각이씨 | A는 B의 어버이이다 | |
문화유씨 | 이창수 | A는 B의 아내이다 | |
문화유씨 | 유한규 | A는 B의 형제이다 | |
유한규 | 사주당이씨 | A는 B의 남편이다 | |
빙허각이씨 | 태교신기언해발문 | A는 B를 저술하였다 | |
빙허각이씨 | 서유본 | A는 B의 아내이다 | |
서유본 | 서유구 | A는 B의 형제이다 | |
빙허각이씨 | 서유구 | A는 B의 스승이다 | |
서유구 | 풍석전집 | A는 B를 저술하였다 | |
풍석전집 | 빙허각이씨묘지명 | A는 B를 포함한다 | |
서유본 | 좌소신안집 | A는 B를 저술하였다 | |
규합총서 | 좌소신안집 | A는 B에 언급되었다 | |
규합총서 | 빙허각전서 | A는 B에 포함된다 | |
청규박물지 | 빙허각전서 | A는 B에 포함된다 | |
규합총서 | 서울대학교 가람문고 | A는 B에 보관되어 있다 | |
규합총서 | 국립중앙도서관 | A는 B에 보관되어 있다 | |
정양완 | 규합총서 | A는 B를 소장하였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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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년 | 빙허각이씨가 규합총서를 저술하였다. |
1869년 | 규합총서가 간행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497765 | 127.003674 | 국립중앙도서관에 규합총서가 소장되어 있다. |
참고문헌
- 단행본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실용서로 읽는 조선』, 글항아리, 2013.
- 한복진·이소영·한복려, 『음식 고전 : 옛 책에서 한국 음식의 뿌리를 찾다』, 현암사, 2016.
- 논문
- 김춘연, 「《閨閤叢書》의 家政學叢書的 性格」, 『전통문화연구』1, 명지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1983.
- 박정숙, 「조선시대 閨閤叢書類 文獻의 한글 서체 조형성 고찰 : 필사본을 중심으로」, 『서예학연구』22, 한국서예학회, 2013.
- 박옥주, 「憑虛閣 李氏의 『閨閤叢書』에 대한 文獻學的 硏究」,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1,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00.
- 온라인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141쪽.
- ↑ 김영혜, 「《閨閤叢書》의 編纂과 筆寫樣相에 관한 考察」,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6, 7-9쪽.
- ↑ 김영혜, 「《閨閤叢書》의 編纂과 筆寫樣相에 관한 考察」,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6, 1쪽.
- ↑ 김영혜, 「《閨閤叢書》의 編纂과 筆寫樣相에 관한 考察」,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6, 12-15쪽.
- ↑ 김영혜, 「《閨閤叢書》의 編纂과 筆寫樣相에 관한 考察」,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6, 87쪽.
- ↑ 김미희,「《閨閤叢書》 의 生活文化的 考察 : 農産物 利用을 中心으로」,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