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왕실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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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大帶)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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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360px|thumb|center|]] | |
대표명칭 | 대대(大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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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용신분 | 왕실 |
착용성별 | 남성 |
정의
복식구성
기본정보
착용신분
착용상황
- 국가 의례, 혼례 등의 대례복을 입을 때.
기본 형태[1]
- 견직물을 사용해 만드는데, 겉은 흰색으로 하고, 안은 붉은 색으로 하며, 가장자리에는 홍색과 녹색으로 가선을 두름.
- 전체 형태는 허리에 두르는 부분인 ‘요(繞)’와 아래로 늘어뜨린 부분인 ‘신(紳)’으로 이루어짐.
- 대대의 앞부분 양쪽 끝에 술을 단 끈을 하나씩 늘어뜨렸는데, 이것은 고대의 뉴약(紐約)을 본뜬 것.
- 뉴약은 남색 견사로 엮은 가는 술띠[絛兒]를 쓰다가 1713년(숙종 39)부터 광대회로 바뀜.
- 가는 술띠일 때는 장식용으로만 부착되었는데 광다회로 바뀌면서 허리에 묶는 실질적인 끈 역할.
- 혁대에는 작은 칼, 불을 피울 부싯돌, 그리고 기타 여러 가지 생활도구를 매달기 때문에 무게가 가볍지 않아 허리에 고정시키기 위해 혁대를 두르고 그 위에 천으로 만든 대대를 둘러싸 가슴 앞에서 잡아 묶음.
- 생필품을 매단 혁대를 지속적으로 거정하기에 이라는 실로 짠 끈을 대대의 묶음 부분에 둘러매 혁대와 대대 두 허리띠가 하나로 고정되어 혁대가 대대 밖으로 빠져 나오지 않게 함.
- 조선시대에는 옥대와 대대를 함께 착용.
기타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
황제 | 대대(왕실남성) | A는 B를 착용한다 |
황태자 | 대대(왕실남성) | A는 B를 착용한다 |
왕 | 대대(왕실남성) | A는 B를 착용한다 |
왕세자 | 대대(왕실남성) | A는 B를 착용한다 |
대대(왕실남성) | 대례복 | A는 B의 부분이다 |
참고문헌
- 고광림, 『한국의 관복』, 화성사, 1995.
- 金明淑, 「朝鮮時代 冕服의 考察-國葬都監儀軌 服玩圖說을 中心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3.
- 金明淑, 「朝鮮時代 王世子 冕服」, 『한국복식학회지』 18권, 1992.
- 金明淑, 「朝鮮後期 冕服의 變遷-國葬都監儀軌 服玩圖設을 통한 考察-」, 『한국복식학회지, 7권, 1983.
- 金明淑, 「한국과 중국의 袞冕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 김진구, 「背戌의 연구」, 『복식문화연구』 5권 4호, 복식문화학회, 1997.
- 김진구, 「보션과 청의 명칭 연구」, 『복식문화연구』 6권 3호, 복식문화학회, 1998.
- 손경자, 「버선의 연구」, 『복식』 2권, 한국복식학회, 1978.
- 유희경, 「冕服에 關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72.
- 이은진, 조효진, 「조선말기 왕실복식 소재에 관한 연구」, 『한복문화』 11권 3호, 한복문화학회, 2008.
- 이혜경, 「면복의 십이장문에 관한 연구-상징적 의미를 중심으로」, 『한복문화』 4권 4호, 한복문화학회, 2001
- 인윤실, 「조선왕조시대 금박에 관한 연구」, 『복식』 2권, 한국복식학회, 1978.
- 전혜숙, 「면복의 십이장문에 관한 연구-상징의의를 중심으로」, 동아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1.
- 최규순, 「이 시대의 진정한 ‘紳士’를 위하여」, 『 전통 의생활 연구』, 제 2집, 단국대학교 전통복식연구소, 2008.
- 최규순, 「황제와 황후의 복식 어떻게 변화했나」, 『대한제국, 잊혀진 100년 전의 황제국』, 민속원, 2011.
- 최규순, 『中國歷代帝王冕服硏究』, 동화대학출판부, 2007.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주석
-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61~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