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행실도 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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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4월 4일 (화) 23:57 판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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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행실도
한글팀 삼강행실도 양산.jpg
한자명칭 三鋼行實圖
영문명칭 Illustrated Conduct of the Three Bonds
작자 설순
간행시기 1730년(영조6년)
간행처 집현전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청구기호 4-4106
유형 고서
크기(세로×가로) 36.2×22.0㎝
판본 목판본
수량 2冊
표기문자 한글, 한자


정의

집현전 부제학인 설순세종 16(1434년)년에 왕명을 받아 편찬·간행한 『삼강행실도』에 언해를 붙여 간행한 책이다.

내용

1434년(세종 16)에 집현전 부제학 설순(偰循, ?~1435)이 왕명을 받아 편찬·간행한 『삼강행실도』에 언해를 붙여 간행한 책이다. 『삼강행실도』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효자·충신·열녀 등 타인의 모범이 될 만한 인물의 사적(事蹟)과 그림을 수록한 책이다. 『삼강행실도』 언해본이 최초로 간행된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대략 1481년(성종 12) 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언해본 『삼강행실도』는 한글 표기와 번역 양식에 따라 1481년 원간본 계통, 1581년(선조 14년) 중간본 계통, 1730년(영조 6년) 중간본 계통으로 구분된다. 이 자료는 1730년 교서관과 각 도의 감영에서 간행된 책이다. 앞 시기에 간행된 판본과 이 판본의 가장 큰 차이는 언해가 훨씬 상세해지고 원문에 충실해졌다는 점에 있다. 『삼강행실도』는 조선의 윤리 및 가치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전통 회화사의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특히 원간본은 세종 대의 한글 표기를 반영한 희소한 문헌 중 하나로 국어학적 가치가 있다. 『삼강행실도』는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여러 차례 발행되었다는 점에서 각 시대별 한글의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1]

부연설명

1428년 진주의 김화가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에 대하여 강상죄(綱常罪 :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에 어긋난 죄)로 엄벌하자는 주장이 논의되었다. 세종은 엄벌을 내리기에 앞서 신하들과 함께 세상에 효행의 풍습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였다.[2] 이 때 판무사 변계량(卞季良)이 "효행록과 같은 서적을 반포하여 백성들에게 읽히고 외우게 하여 효제와 예의에 충실하게 하라"고 건의하였다. 1434년 세종의 명에 의해 조자고이십사효량합벽(趙子固二十四孝量合壁)과 효행록, 그리고 삼국시대로부터 조선 초기까지의 孝, 忠, 列의 모범 사례를 수집, 보충하여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가 간행되었다.[3] 그러나 한문을 읽지 못하는 일반 백성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이러한 이유로 세종은 1443년 훈민정음이 창제되자 곧바로 삼강행실도 언해본의 반포를 계획했으나, 정창손 등의 반대에 부딪쳐 무산되었다.
앞서 삼강행실도의 언해본이 최초로 간행된 시기는 1481년(성종 12)으로 추정된다. 1480년 어우동 사건으로 인해 사대부 집안 부녀자들의 음행(淫行) 문제가 불거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부녀자들에 대한 교화의 필요성을 느낀 성종은 『삼강행실열녀도(三綱行實烈女圖)』의 간행 및 반사(頒賜)를 지시했는데 주목할 만한 점은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전체가 아닌 『삼강행실열녀도(三綱行實烈女圖)』만을 간행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간행에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한 어우동 사건 뿐만이 아니라 부녀자들에 대한 유교윤리 보급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던 시대 상황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성종 8년에 제정되었던 재가금지법(再嫁禁止法 : 재가한 부인의 자손은 관직을 맡지 못하게 하는 법)이 제정되어 부녀자의 재가를 막는 간접적인 수단이 되었다. 이 법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부경이부(不更二夫)의 규범을 보급할 필요가 있었는데 『삼강행실열녀도(三綱行實烈女圖)』는 이러한 도덕 규범에 부합하는 서적이었다. 이에 어우동사건을 계기로 『삼강행실열녀도(三綱行實烈女圖)』를 간행하여 열(烈)의 규범을 보급하고자 한 것이다.
『삼강행실열녀도(三綱行實烈女圖)』의 언해본이 간행된 후 성종 21년에는 보다 효과적인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의 보급을 위해 기존의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을 산정한 『삼강행실도 산정본(三綱行實圖 刪定本)』을 반사했다. 이후 보급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는 모두 이 산정본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4]

시각자료

관련 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삼강행실도 언해 세종 A는 B의 편찬을 명했다 1434
삼강행실도 언해 설순 A는 B를 저술하였다
삼강행실도 언해 교서관 A는 B를 저술하였다
삼강행실도 언해 삼강 A는 B와 관련이 있다
효행록 삼강행실도 언해 A는 B의 모델이다
삼강행실도 언해 어우동사건 A는 B와 관련이 있다


시간정보

시간 내용
1434년 세종이 삼강행실도 언해의 편찬을 명했다
1481년 어우동사건을 계기로 삼강행실도 언해의 언해본이 최초로 간행되었다.
1490년 성종의 명으로 삼강행실도 언해의 산정본(刪定本)이 간행되었다.
1581년 선조가 삼강행실도 언해의 중간본 간행을 명했다
1730년 영조가 삼강행실도 언해의 중간본 간행을 명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581892 126.978970 삼강행실도는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37.392238 127.054309 삼강행실도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있다
36.336710 127.335169 삼강행실도는 대전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35.335594 129.037482 삼강행실도는 양산시청에 소장되어있다


참고문헌

  • 단행본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 논문
    1. 한관일 「 『三綱行實圖』의 社會敎育的 意義」, 『교육과학연구』9권, 청주대학교 교육문제연구소, 1995,
    2. 김훈식, 「朝鮮初期 『三綱行實圖』 보급의 대상」, 『仁濟論叢 Vol.12』, 인제대학교, 1996.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46-47쪽.
  2. 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삼강행실도
  3. 한관일, 「『三綱行實圖』의 社會敎育的 意義」, 『교육과학연구』9권, 청주대학교 교육문제연구소, 1995,
  4. 김훈식, 「朝鮮初期 『三綱行實圖』 보급의 대상」, 『仁濟論叢 Vol.12』, 인제대학교,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