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신기언해
태교신기언해 | |
한자명칭 | 胎敎新記諺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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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he first book of prenatal education published in the Joseon dynasty |
작자 | 사주당이씨, 유희 |
작성시기 | 1800년 |
간행시기 | 1938년 |
기탁처 | 진주유씨 서파후손가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25.5×18.6㎝ |
판본 | 석인본 |
수량 | 1冊 |
표기문자 | 한글, 한자 |
정의
이론과 실제를 구비하여 태교의 중요성과 방법을 체계화한 조선시대에 저술된 최초의 태교전문서
내용
1800년(정조24) 사주당이씨師朱堂李氏(1739∼1821)가 한문으로 짓고, 아들 서파西陂 유희柳僖, 1773~1837가 음의音義와 언해를 붙인 것을 1938년 경상북도 예천에서 간행한 태교전문 서적이다. 이 책은 사주당이씨와 아들 유희의 공동 저술이라 할 수 있다. 서두에 신작申綽(1760~1828)의 서문(1821년)과 정인보鄭寅普(1893~?)의 서문(1936년)이 실려 있고, 이어서 본 책의 본론에 해당하는 ‘태교신기장구대전胎敎新記章句大全’ 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신작이 찬술한 사주당이씨 묘지명, 유희의 발문1801년, 권상규權相圭(1874~1961)의 발문(1936년), 이충호李忠鎬의 발문(1937년), 권두식權斗植의 발문(1936년), 유희의 증손 유근영柳近永의 발문(1936년) 등이 차례대로 실려 있고, 마지막에 유희가 지은‘태교신기언해胎敎新記諺解’가 수록되어 있다. 번역문에 나오는 모든 한자마다 한글로 음을 달았으며, 여타 언해본들과 마찬가지로 한 문장씩 떼어서 먼저 한글로 토를 달고, 이어서 우리말로 옮기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 저술된 최초의 태교전문서로서 이론과 실제를 구비하여 태교의 중요성과 방법을 체계화한 저술로 평가된다.[1]
부연설명
사주당 이씨는 유한규의 네번째 아내(再娶)이다. 사주당 이씨는 여류문장가로 유명했으나 아들 유희에게 유언으로 『태교신기언해』만 남기고 다 불살라 버리라 하였다. 아녀자로 태어나 문장을 남기는 것을 덕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나, 『태교신기언해』만은 남기라고 한 것을 보아 이 책에 대한 그녀의 자부심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아들 유희가 쓴 발문을 보면 『태교신기언해』는 사주당 이씨가 음식, 의서, 임산부의 금기 등을 모아 책으로 만든 『교자집요(敎子輯要)』가 바탕이 되었다. 여기에서 「양태절목(養胎節目)」만 뽑고 『소학』의 「소의(少儀)」와 「내칙(內則)」의 내용을 보충한 것에 유희가 언해를 달아 유희의 28번째 생일날 완성되었다.
1장 「지언교자(只言敎字)」에서 태교의 이치, 2장 「지언태자(只言胎字)」에서 태교의 효과, 3장 「비론태교(備論胎敎)」에서 태교의 이유, 4장 「태교지법(胎敎之法)」에서 태교의 방법, 5~9장 「잡론태교(襍論胎敎)」에서 태교에 관한 논의, 10장 「유언태교지본(推言胎敎之本)」에서 태교의 근본을 말하고 있다.[2]
시각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전시 [1] 한글전시도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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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신기언해 | 인물 | 사주당이씨 | |
태교신기언해 | 인물 | 유희 | |
태교신기언해 | 인물 | 신작 | |
태교신기언해 | 인물 | 정인보 | |
태교신기언해 | 인물 | 권상규 | |
태교신기언해 | 인물 | 이충호 | |
태교신기언해 | 인물 | 권두식 | |
태교신기언해 | 인물 | 유근영 | |
태교신기언해 | 사건 | 병인사옥 | |
태교신기언해 | 개념 | 태교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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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 정조가 가체신금사목을 저술하였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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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9197 | 127.054387 | 장서각에 태교신기언해이 소장되어 있다. |
35.947768 | 127.689751 | 적상산 사고에 태교신기언해이 보관되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