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Encyves Wiki
최한샘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3월 31일 (금) 15:50 판

이동: 둘러보기, 검색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
답사 이후 추가 예정
대표명칭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한자 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
이칭 보각국사 정혜원융탑(普覺國師 定慧圓融塔)
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청룡사지길 147
문화재 지정번호 국보 제197호
문화재 지정일 1979.05.22
소유자 국유
관리자 청룡사
크기 높이 263㎝
건립시대 조선
관련승려 혼수
관련탑비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에 위치한 충주 청룡사지(忠州 靑龍寺址)에 있는 고려 말, 조선 초 승려 혼수(混修)의 부도.

내용

청계산 중턱의 청룡사에 자리한 탑으로, 보각국사의 사리를 모셔놓았다. 보각국사(1320∼1392)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12세에 어머니의 권유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이후 불교의 경전을 두루 연구하여 높은 명성을 떨쳤다. 특히 계율을 굳게 지키고 도를 지킴에 조심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조선 태조 원년(1392)에 73세의 나이로 목숨을 다하자, 왕은 '보각'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이름을 ‘정혜원륭’이라 내리어 탑을 세우도록 하였다.

탑은 전체가 8각으로 조성되었는데, 바닥돌 위에 아래·가운데·윗받침돌을 얹어 기단(基壇)을 마련하고 그 위로 탑몸돌과 지붕돌을 올려 탑신(塔身)을 완성하였다. 기단은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8각으로,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새겼다. 가운데돌에는 사자상과 구름에 휩싸인 용의 모습을 교대로 새겼다. 탑신의 몸돌은 각 면마다 무기를 들고 서 있는 신장상(神將像)을 정교하게 새겨 놓았으며, 그 사이마다 새겨진 기둥에는 위로 날아오르는 이무기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하였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에서 높이 들려있는데 마치 목조건축의 아름다운 지붕 곡선이 살아난 듯하다.

태조 3년(1394)에 완성을 보게 된 이 탑은 양식상 종모양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8각의 평면을 이루는 형식으로 건립된 몇 안되는 탑 가운데 하나로, 조선시대 전기 조형미술의 표본이 되는 귀중한 유물이다. 또한 탑 가득히 새겨진 조각과 둥글게 부풀린 외형이 어우러져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탑신의 기둥과 지붕의 곡선, 그리고 지붕 귀퉁이의 용머리조각 등에서 목조건축의 양식을 엿볼 수 있어 당시의 건축과 비교하여 감상할 만하다.


1979년 5월 22일 국보 제197호로 지정되었다.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청룡사지에 있으며 보각국사의 사리를 모셔놓았다. 보각국사(1320∼1392)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12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이후 불교의 경전을 두루 연구하여 높은 명성을 떨쳤다. 우왕 초에 송광사(松廣寺) 주지를 지내고 1383년(우왕 9) 국사(國師)가 되었다. 조선 태조 원년(1392)에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태조가 왕명으로 탑을 짓게 하여 권근(權近)이 비문을 짓고 김천택(金天澤)이 글씨를 써서 1394년(태조 3)에 세우고 탑명을 정혜원융(定慧圓融)이라 하였다. 무너져 있던 것을 1968년 복원하였다.

탑은 전체가 8각으로 조성되었으면서도 새로운 양식이 도입된 부도이다. 지표에는 높은 8각의 지대석이 있으며, 그 위에는 하대석이 있다. 상면에는 연화문이 양각되고 그 중심에는 방형의 3단 굄이 있으나 최상단은 원형으로 북 모양의 형태를 한 중대석이 놓여졌다. 그 측면에는 코끼리 눈 모양으로 생긴 무늬가 조각되고, 그 안에는 사자상과 구름에 휩싸인 용의 모습을 교대로 새겼다.

탑신은 원형에 가까운 팔각으로, 각 면에 용이 양각되어 있는 기둥이 놓여지고, 그 안에 신장상(神將像)을 1구씩 정교하게 새겨 놓았다. 옥개석은 여덟 귀퉁이에서 높이 들려 있는데, 가장자리 부분에는 용의 머리모양이 장식되어 있다. 상륜부에는 앙화와 보주, 화염보주가 거의 완전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 부도는 옆에 있는 탑비에 의하여 건립년도를 알 수 있으며, 탑신의 기둥과 지붕의 곡선과 용머리조각 등에서 목조건축의 양식을 엿볼 수 있다. 조선 전기 조형미술의 표본이 되는 귀중한 유물이다.

국보 제197호. 높이 263㎝. 팔각원당형을 따르면서 새로운 양식이 도입된 부도이다. 지표에 높은 8각지대석이 있고 그 위에 하대석이 놓이는데, 하대석에는 8각의 높은 굄 위에 복판(複瓣) 단엽(單葉) 16판(瓣)의 복련(覆蓮)이 조각되었다. 중대석은 8각으로 배가 불러서 편구형과 비슷하며, 각 면에는 안상(眼象)을 조각하고 그 안에 사자와 운룡(雲龍)을 교대로 조각하였다. 상대석에는 하대석과 같은 양식의 앙련(仰蓮)을 조각하여 마치 하대석을 뒤집어놓은 것 같다. 탑신(塔身)은 구형(球形)에 가까워 회암사지 부도(檜巖寺址浮屠)를 연상하게 하나 그보다는 8각의 형태가 뚜렷이 나타나 있다. 우각(隅角)마다 반룡(蟠龍: 아직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땅에 서려 있는 용)이 돋을새김된 원주(圓柱)를 강한 부조로 모각하였고, 각 면에는 안상 안에 무기를 든 신장상(神將像)을 1구씩 조각하였으며 기둥 위에는 목조 건물의 가구(架構)를 모각하되 옥개석(屋蓋石)의 이면까지 연장되었다. 옥개석은 8각으로 이면에는 탑신에서 연장되는 목조 가구가 모각되고 밖으로 16판의 단엽 연화가 조각되었으며, 낙수면(落水面)은 급한 경사를 이루고 높은 우동(隅棟: 옥개석의 귀마루)이 내려와서 끝에는 용두(龍頭)가 조각되었다. 처마 밑은 호선(弧線)을 그려서 추녀가 높이 들렸고, 꼭대기에는 8판 복련이 조각되었다. 상륜부(相輪部)에는 앙화(仰花)·복발(覆鉢)·화염보주(火焰寶珠)가 차례로 얹혀 완형을 이루었다. 이 부도는 원위치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68년 복원하였고, 상륜부는 지하에 파묻혔던 것을 원위치에 복원하였다. 또한, 지대석 밑 지하와 탑신 상면에는 각각 사리공(舍利孔)이 있으나 장엄구들은 일제강점기 말기에 도난당했다. 보각국사 혼수(混修)의 묘탑인 이 부도는 옆에 있는 탑비에 의하여 1394년(태조 3)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부도의 귀중한 일례로서 회암사 부도·신륵사 보제존자석종(神勒寺普濟尊者石鐘) 앞 석등 등과 양식상 상통하는 바가 있어 조선 전기 석조미술의 표본적 유물로 꼽힌다.

관련항목

node relation node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는 -를 위한 승탑이다 혼수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는 -에 위치한다 충주 청룡사지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는 -와 관련있다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

갤러리

답사 이후 추가 예정

참고문헌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