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헌지(유송)
- **서헌지(徐羨之, 364~426)**
- 서헌지**(徐羨之, 364~426)는 중국 **유송(劉宋)** 초기의 권신으로, **무제(武帝, 유유)**의 신하로 활약하다가 **소제(少帝, 유의부)**를 폐위시키고 **문제(文帝, 유의륭)**을 옹립한 핵심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복수를 위해 그를 제거하려 하자 자결했습니다.
- **생애**
- **1. 진(晉)나라 시절**
- **왕아(王雅), 유뢰지(劉牢之)** 등의 휘하에서 일했습니다. - **환현(桓玄)**의 집권기에는 환현의 사촌 **환수(桓脩)** 밑에서 일했으며, 이때 **유유(劉裕, 후의 무제)**와 동료로 지내며 친분을 쌓았습니다. - 유유가 환현을 타도하는 반란(404년)을 일으키자 참여해 유송 건국의 기반을 다지는 데 공헌했습니다.
- **2. 유송 무제(武帝) 시기**
- 유유가 유송을 건국(420년)하자 **남창현공(南昌縣公)**에 봉해지고 **양주자사(揚州刺史)**로 임명되었습니다. - 냉철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으로 유명했습니다.
- **3. 소제(少帝) 폐위 사건**
- 무제가 죽자(422년) 소제(유의부)를 보좌하는 **섭정**이 되었습니다. - 소제가 정치를 소홀히 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자, **부량(傅亮), 사휘(謝晦)** 등과 함께 폐위를 계획했습니다. - 먼저 소제의 동생 **유의진(劉義眞)**을 제거한 뒤, 소제를 폐위하고 **유의륭(劉義隆, 문제)**을 새 황제로 옹립했습니다(424년). - 이후 소제와 유의진을 암살해 후환을 없앴습니다.
- **4. 문제(文帝) 시기와 최후**
- 문제는 서헌지 일파의 공로를 인정해 관직을 유지시켰지만, 형제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계획했습니다. - 426년, 문제는 서헌지, 부량, 사휘 등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 서헌지는 체포를 피해 도망쳤으나, 결국 **도자기 가마 속에서 목을 그어 자살**했습니다. - 그의 아들 **서교지(徐喬之), 서걸노(徐乞奴)**도 처형당했습니다.
- **평가**
- 유능한 관료였지만, 황제를 폐위하고 살해한 행적 때문에 후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 **"서헌지와 부량의 말을 들으면 자신이 학식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리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뛰어난 언변과 정치력을 가졌습니다.
관련 인물: **부량(傅亮), 사휘(謝晦), 유의륭(문제)**
더 자세한 내용은 《송서(宋書)》 등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