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송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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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독행(徐積篤行)

徐積 楚州人 三歲父死 朝朝求之甚哀 母使讀孝經 輒淚落不能止 事母至孝 朝夕冠帶定省應擧 入都 不忍捨其親 徒載而西 登第 擧首許安國率同年入拜 且致百金爲壽 謝而却之 以父名石 終身不用石器 行遇石 則避而不踐 母亡 悲慟嘔血 廬墓三年 雪夜伏墓側 哭不絶音 翰林學士呂溱 過其墓 聞之 爲泣下曰 使鬼神有知 亦垂涕也 甘露歲降兆域 杏兩枝合爲榦 旣終喪 不徹筵几 起居饋獻 如平生 州以行聞 詔賜粟帛 元祐初 爲楚州敎授 又轉和州防禦推官 徽宗賜諡節孝處士 오륜행실도 1:51ㄴ嬰孩亡父日哀求 感切中情涕泗流 事母更能躬孝養 當時名士復誰儔 致養居喪總盡情 神明黙贊顯祥禎 重膺朝命榮褒寵 今古人傳節孝名

서적독행(徐積篤行)【송(宋)나라】 - 서적이 돈독한 행실을 하다 서적은 송나라 초주 사람이다. 삼세에 아버지가 죽으니, 아침마다 찾으며 심히 서러워하고, 어머니가 〈서적에게〉 효경을 읽히면, 문득 눈물을 그치지 아니하고,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겨, 관과 띠를 갖추어 조석으로 문안하였다. 〈서적이〉 과거를 보러 서울에 올 때 차마 어머니를 〈두고〉 떠나지 못하여, 한 가지로(같이) 실어서 갔다. 급제하므로, 장원 허안국(許安國)이 동년(同年)【동방(同榜 : 같이 과거를 본 사람) 과거한 사람이다.】을 거느리고 들어와 뵙고, 백금을 주어 헌수(獻壽; 장수를 빎)하려 하였으나, 사례(謝禮; 사양함)하여 받지 아니하였다. 아버지의 이름이 돌석자라 하여, 종신토록 돌그릇을 아니 쓰고, 길에서 돌을 만나면 피하고, 밟지 아니하며, 어머니가 죽으므로, 비통하여 피를 토하고, 삼년을 여묘하여, 눈오는 밤이면 묘 옆에 엎드려 울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한림학사 여진이 그 무덤을 지나가다가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귀신이 알음이 있을 것이면, 또한 눈물을 지우리라.” 하였다. 〈맛이〉 단 이슬이 해마다 무덤 앞에 내리고, 살구나무 두 가지가 합하여 한 등걸이 되었다. 거상을 마쳤지만 궤연을 걷지 아니하고, 문안과 음식을 드리기를 상시(常時)같이 하였다. 원이 〈들으시고〉 효행으로 주문하여, 곡식과 비단을 주시고, 후에 초주 교수를 하고, 또 화주 방어추관 벼슬로 옮겼다. 휘종(徽宗) 황제가 시호를 주셔서 절효처사(節孝處士)라 하였다.

어린 자식 아비가 돌아가자 날마다 슬피 울며 찾아 간절하게도 속마음으로부터 느껴 그저 눈물을 흘려. 어머니 섬기려니 더욱더 몸소 효도를 다해 봉양하니 당시의 이름난 사람들 중에 다시 누가 견줄 수 있으려나. 봉양하고 거상하기를 극진하게 효성을 다하니 신명께서도 말없이 찬미하여 상서로운 복 주어. 거듭하여 조정에 벼슬하니 포상의 은혜 영화롭다 예부터 이제까지 사람들에게 절효(節孝)로 전해 와.

徐積이 세 설 머거셔 아비 죽거늘 아마다 甚히 슬피 어드며 아나죄 冠帶 야 어믜그 뵈더라 及第라  저긔 어미 리디 몯야 제 술위 어 가아 及第야 同年히 모다 어믜그 절고 이바디호려 커늘 받디 아니니라 아 일후미 돌히러니 죽록 돌그르슬 디 아니며 돌 디 아니터라 어미 죽거늘 슬허 피 吐며 侍墓 저긔 눈 온 바 墓ㅅ 겨틔 업데여 이셔 소리 그치디 아니야 울어늘 翰林學士ㅣ 디나가다가 듣고 우더라 甘露ㅣ 마다 墓애 디며 곳 가지 어우러 냇더니 居喪 고 돗과 궤와 걷디 아니고 이바도 平生티 더니 올셔 엳 조콰 깁과 주라 시니라 後에 和州 防禦推官 얫다가 죽거늘 諡號≪諡 뎍로 일훔 고텨 지 씨라≫ 節孝處士ㅣ라 시니라≪節 節个ㅣ라≫ 서적(徐積). 초주(楚州) 산음(山陽) 사람으로 자는 중거(仲車)이고, 호는 남곽옹(南郭翁)임. 북송(北宋)의 청각장애인 출신 관리로 호원(胡瑗)의 제자로서, 치평(治平) 4년(1067)에 진사(進士)로 급제하였으나, 청각 장애인이라서 임관을 사양했음. 비록 청각에 장애가 있었지만,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효성이 지극했다 함. 뒤에 추천을받아, 양주사호참군(揚州司戶參軍), 초주교수(楚州教授), 화주방어추관(和州防禦推官), 선덕랑(宣德郞), 감서경숭산중악묘(監西京嵩山中嶽廟)를 지냈다. 시호는 절효처사(節孝處士)임. 송(宋):당(唐), 오대십국(五代十国)에 이어지는 중국의 통일 왕조. 카이펑[开封]을 도읍으로 정한 북송(北宋; 960~1127)과 임안(临安; 지금의 항주(杭州))을 도읍으로 정한 남송(南宋; 1127~1279)을 가리키며, 남조(南朝)의 유송(刘宋)과 구별하여 조송(趙宋)이라고도 함. 오대(五代) 말기 후주(后周) 세종(世宗)이 죽은 뒤 절도사 조광윤(趙匡胤)이 근위병(近衛兵)의 추대를 받고 천자의 자리에 올라 960년 카이펑에 도읍을 정하고 송을 건국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