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계여(청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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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계여 (徐继畬, Xú Jìyú, 1795~1873)**
    • 생몰년**: 1795년 ~ 1873년
    • 국적**: 청나라
    • 직업**: 관료, 학자, 지리학자
    • 대표 저서**: 《영환지략》(瀛寰志略)
    • 생애 및 주요 활동**

서계여는 청나라 도광(道光)·함풍(咸丰) 연간의 저명한 관료이자 학자로, 산서성(山西省) 오대현(五臺縣) 출신이다. 1826년 진사에 합격하여 관직에 올랐으며, 복건성 순무(巡撫) 등을 역임했다.

그는 서양과의 접촉이 늘어나던 시기에 **《영환지략》**(1848)을 저술하여 세계 지리와 서양 제국의 정치·경제·문화를 체계적으로 소개했다. 이 책은 위원(魏源)의 《해국도지》(海國圖志)와 함께 청말 개방 사상의 중요한 저작으로 평가된다.

    • 역사적 의의**
    • 서양에 대한 객관적 인식**: 기존 중화사상에 갇히지 않고 서양의 강점을 분석, 청나라 지식인들에게 세계관을 넓히는 계기를 제공했다.
    • 근대화 논의의 선구자**: 그의 저서는 양무운동(洋務運動)과 변법자강운동(變法自強運動)에 영향을 미쳤다.
    • 대외 관계**: 미국 독립선언문을 중국어로 최초로 소개하기도 했다.
    • 한국과의 연관성**

《영환지략》은 조선 후기 개화파 지식인들에게도 읽혔으며, 한국의 근대적 세계관 형성에 간접적 영향을 주었다.

    • 기타**

1998년 미국 국립조형미술관(NPG)에는 그의 공적을 기리는 비문이 설치되기도 했다.

서계여는 **"중국 최초의 세계 탐구자"**로 불리며, 전통적 사유에서 벗어난 실용적 학문을 강조한 인물로 평가된다.

청대 정치가, 계몽 사상가이다. 자는 건남(健男), 호는 송감(松龕)으로, 산서성(山西 省) 오대현(五臺縣) 사람이다. 1826년 진사에 급제한 뒤 한림원(翰林院) 편수(編修)로서 관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주로 양광(兩廣), 복건(福建) 등지에서 관리 생활을 했다. 1840년 아편 전쟁 발발 직후 하문(廈門)과 복주(福州)의 통상 업무를 보면서 세계와 서구를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를 느끼고, 서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해 1848년에 『영환지략』을 편찬했다. 주요 저작으로는 『퇴밀재시문집(退密齋 時文集)』, 『고시원비주(古詩源批注)』, 『오대신지(五臺新志)』, 『거우집(擧隅集)』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