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소주)
소주에는 4대 명원이 있다. 졸정원(拙政園)·유원(留園)·창랑정(滄浪亭)·사자림(獅子林) 등이 그것이다. 유원은 여문(閭門) 밖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명대 가정(嘉靖) 연간에 서태시(徐泰時)가 소유한 동원(東園)의 터다. 유원의 명칭은 '천지간에 오래 머물게 만드는(長留天地間)' 정원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정원의 면적이 약 2만 평방미터로, 그 규모가 크고, 중앙의 연못을 중심으로 하여 동·북·서의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입구를 들어서면 사당(祠堂)-문청(門廳)-대청(大廳)의 순으로 지나가게 된다. 주택의 규모가 크기 때문인지 진입하는 공간마다 중정이 배치되어 있어 찾아오는 이를 잠시 머물게 한다. 바닥 포장의 문양이나 수목의 배치 형태가 현대적인 디자인 감각을 지니고 있다. 마치 포켓파크(Pocket Park), 즉 소공원(小公園)을 보는 것 같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현대 도시의 고층건물 사이에 겨우 숨쉴 공간으로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포켓파크는 비록 그 규모가 작지만 도시민들에게 더할 나이 없는 휴식의 공간이요, 삶의 쉼터가 된다.
이곳 소주에 있는 고대광실(高臺廣室)과도 같은 대저택에 있는 포켓파크는 어떤 의미로 만들어졌을까?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드는 방문객들을 잠시나마 멈추고 숨 돌리게 하려는 배려일까? 아니면 앞으로 펼쳐질 더 넓은 정원의 충격(?)을 조금이라도 완화시켜, 보는 이로 하여금 감상의 묘미를 더욱 배가시키기 위한 솜씨일런가?
이곳을 지나 장랑으로 들어서다 보면 장방형 동문 위에 있는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장유천지간(長留天地間)"이라는 그 유명한 현판이다. 과연 '세상에 둘도 없는 별유천지인가?'에 대한 대답은 보는 이에 달려있을 것이다.
장랑을 따라 가다보면 넓게 펼쳐진 연못이 나온다. 왼쪽으로는 함벽산방(涵碧山房)과 명슬루(明膝樓)가 평대(平臺)를 끼고 배치되어 있고, 오른쪽으로는 곡계루(曲溪樓)와 오봉선관(五峰仙館)이 펼쳐져 있다. 명슬루는 함벽산방의 동쪽에 딸린 2층 누각이다. 지붕의 모습이 날렵하고도 하늘을 찌르는 듯한 곡선을 이룬다. 중국 건축 특유의 지붕선이다. 2층 누각에 있는 다양한 형태의 누창이 이채롭게 다가온다. 오른쪽에 있는 곡계루로 연결된 장랑을 따라가다 보면 다양한 형태의 동문을 만나게 된다. 어떤 동문에는 태호석이 연못을 배경으로 마치 자신의 초상화를 보여주려는 듯이 단정히 서 있다.
연못의 중앙에는 소봉래(小蓬萊)라는 작은 섬이 하나 있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불로장수에 대한 염원이 대단하였다고 한다. 노장사상(老莊思想)을 중심으로 변형·발전되어 온 도교(道敎)는 중국인들의 심성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관념으로, 세상의 모든 이치와 만물의 현상계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겠다. 봉래산·영주산·방장산 등과 같은 삼신산(三神山)은 신선이 살고 있는 신성한 산으로 존중 받아왔다. 그러한 관념을 이곳 유원에서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곳 연못의 가운데에 만든 소봉래(小蓬萊)! 그곳을 가기 위해 이곳 원주(園主)는 서씨를 멀리 동해의 해뜨는 나라로 보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냥 구곡교를 건너기만 하면 되니까.
동쪽으로 더 가다보면 긴 장랑이 있는 원취각(遠翠閣)이 나온다. 이곳에는 석가산이 자리 잡고 있어 함벽산방에서 바라보면 우뚝 솟은 산으로 보이는 곳이다. 이곳 원취각 주변에는 돌로 된 식재대(植栽臺)가 하나 있다. 명대(明代)의 유물로 전해지는 것으로, 네 모서리를 자세히 보면 기이한 부조(浮彫)를 발견할 수 있다. 두 마리 사자가 가운데 구슬을 놓고 서로 희롱하는 모습을 새겨 놓은 것이다.
쌍용쟁주(雙龍爭珠)의 모습이 아니라 쌍사쟁주(雙獅爭珠)의 모습을 새겨 놓은 것이다. 식재대는 나무를 심어두는 곳을 말한다. 영어로 말하면 플랜터박스(Planter Box), 사소한 것으로 여겨지는 시설물에도 정성을 다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중국에서 사자는 신성하면서도 친근한 민속 동물 중의 하나가 된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사자림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곳 유원도 마찬가지였다.
원취각을 지나면 오봉선관(五峰仙館)이 나오고 읍봉헌(揖峰軒)과 임천기석지관(林泉嗜碩之館)이 있는 동원(東園)이다. 임천기석지관 앞에는 관운봉(冠雲峯)이 우뚝 솟아 있는데, 이곳은 명대 서(徐)씨가 소유한 동원의 흔적으로, 이곳의 수석과 누각들은 모두 '운(雲)'자를 넣어 이름 지었다. 관운봉이 있는 방지(方池)를 관운소(冠雲沼)라 했고, 이를 보다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관운루(冠雲樓)를 맞은편에 세웠다. 여기서 북원(北園)으로 진입하면 우일촌(又一村)이라 새겨진 동문을 만난다. 이 문을 지나면 분재원(盆裁園)에 이르게 된다.
분재원에는 관운봉과 관운소를 모티브로 한 커다란 분경(盆景)을 만나게 된다. 이곳의 분경은 분 위에 올린 경치가 아니라, 땅 바닥에 올린 커다란 분경인 것이다. 이곳을 지나 서쪽 부분의 정원에 올라서면 산림 풍경이 남쪽에 전개된다. 북쪽 부분은 전원 경색을 형성하고 있으며, 서쪽 부분은 산림 풍광이 자연스러운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