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조
공조참의 서두조(徐斗祚)
서진을 시조로 하고 서몽호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양산시 세거 성씨.
시조 서진(徐晉)이 고려시대에 봉익대부(奉翊大夫)와 판도판서(版圖判書) 등에 오르면서 나라에 공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지고 달성(達城)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세거하게 되었으며, 후손들이 달성(達城)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계승하고 있다.
달성(達城)은 현재 대구광역시 일원의 옛 지명인데 다른 이름으로 삼한시대에는 달구화(達句火) 또는 달구벌(達句伐)이라 불렀다. 시조 서진의 아들 서기준(徐奇俊)과 손자 서영(徐穎)까지 3대가 달성군에 봉해졌다고 한다. 후손들이 달성(達城)을 본관으로 정한 뒤 경파(京派)는 소윤공파(少尹公派) 대구서씨로, 향파(鄕派)는 판도공파(版圖公派) 달성서씨로 각각 분파하였다.
달성서씨는 다시 현감공파(縣監公派)·학유공파(學諭公派)·판서공파(判書公派)·감찰공파(監察公派)·진사공파(進士公派)·생원공파(生員公派)·참판공파(參判公派)·종사랑공파(從仕郞公派) 등 9파로 나뉘어졌다.
서몽호(徐夢虎)는 임진왜란 때에 창의하여 주부(主簿)에 제수되고 후에 증산사(甑山祠)에 배향되었다. 달성군 서보(徐普)의 후손이며, 주부(主簿) 서건손(徐乾孫)의 증손이다. 울산으로부터 와서 지금의 양산시 매곡동에 살았다. 유집(遺集)이 있고 후손이 번성하였다.
양산산시 웅상지역 일원에 서몽호(徐夢虎)의 후손이 살고 있으며, 서중왕의 후손이 물금읍 증산리와 상북면 좌삼리를 중심으로 상북면 내에 140여 호가 살고 있다. 이외에 공조참의(工曹參議) 서두조(徐斗祚)의 후손이 하북면 답곡리에, 서도(徐渡)의 후손이 북부동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