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진
대한민국의 기업인. 셀트리온 명예회장이자 창업주다.
1957년 10월 23일,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충북지방산림청 산림공무원 출신이었으며 일가친척 거의 대부분이 현 세종시 일대에 거주해왔다. 이후 서울로 상경해 아버지는 작은 연탄가게를 하는 등 가정 형편은 어려웠다고 한다.
제물포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충북대학교에서 세계 최초의 항체 바이오 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인 램시마를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박사를 받았다. 1983년 삼성전기에 입사해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공공기관인 '한국생산성본부'로 이직했는데, 삼성전기 이사가 눈여겨보는 젊은이로 점 찍어놨다가 자기가 이직하면서 데리고 간 유일한 부하였다고 한다. 서정진 회장은 당시에 대해 "성실했으며, 현상을 파악한 후 요점을 정리하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자평했다.
그렇게 한국생산성본부로 자리를 옮겨 대우자동차를 컨설팅하다 당시 김우중 회장이 맘에 들었는지 스카웃해 1991년부턴 대우자동차 기획재무 고문으로 일하게 된다. 이 때가 불과 34세로 그야말로 샐러리맨의 신화를 쓴 인물 중 한명. 그러나 샐러리맨 신화도 IMF 외환위기 앞에선 별 수 없는지 1999년 짤린다. 대우그룹이 부도나면서 김우중 회장은 1999년 중국 산둥성 옌타이 공장 착공식 참가를 마지막으로 잠적했고 대우자동차 역시 그룹이 부도나자 워크아웃을 신청, 결국 서정진도 직장을 잃게 된다.
이렇게 1999년에서 2002년 사이가 서정진이 가장 힘들 때였다. 그는 1999년 셀트리온의 전신인 넥솔을 창업해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얻어 비슷한 신세가 된 동료들과 함께 창업을 구상하기로 마음 먹는데, 차기 사업에 대한 담론으로 IT부터 해서 별의별 얘기가 다 나오는 와중에 그때까지 미개척 오브 미개척인 바이오산업이 유망하다는 판단에 따라 대우자동차 출신 동료 10여 명과 함께 자기들 자금 총 130억 원과 초기 투자 470억 원을 받아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재미있는건 이때 생물학 관련 전공자는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바이오산업이 유망하다는 판단하에 일종의 승부수를 띄웠다고 한다. 그러나 바이오 기술에 대해 전혀 몰랐던 관계로 서정진은 1년간 40여 개국을 다니며 외국의 유명 바이오 연구자들을 방문 인터뷰하는 등 최신 동향을 배운다.
이후 2002년 셀트리온을 설립해 미국 벡스젠사와 제휴를 맺으며 사업을 본 궤도에 올리기 시작했으며, 2004년 쯤이면 모든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마침내 인천광역시 송도국제도시에 셀트리온 1공장을 올리는데 성공했다. 사업은 점차 번창해, 2007년 쯤 되면 완전히 모양새를 갖춤은 물론 인맥도 꽤 많이 얻게 되며, 2009년 이후에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벤쳐기업 선두주자로 거듭난다.
결과적으로 20년 남짓한 시간에 셀트리온을 바이오시밀러 분야 대기업으로 키우는 업적을 달성한다. 김태한과 함께 한국 바이오 산업을 최전선에서 일으켜 세운 인물로 평가받는다.
2020년 12월 31일, 세는 나이로 65세가 될 때 은퇴하겠다는 공약을 지켜, 셀트리온 회장직에서 사임하고 퇴사하기로 했다. 셀트리온 직원들과 출입기자, 주주들한테 이메일로 보낸 고별사에서 "언제나 은퇴를 생각해왔다"며, "원격의료 스타트업에서 새출발하겠다", "셀트리온은 후배들이 알아서 잘 경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주시 소재 청주중학교를 입학하였다가 가족들이 모두 서울로 상경하면서 전학을 갔다. 당시 산림청 소속 충북지방삼림청 공무원이었던 부친이 퇴직한 후 서울 은평구 구파발역 인근의 기자촌에 정착하며 상경하여 졸지에 아는 사람도 없던 서울로 가게 된다. 이후 인천광역시 소재 제물포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건국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했다.건국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친 뒤, 충북대학교에서 명예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남동생 서정수
배우자 박경옥
장남 서진석
차남 서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