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전도인 서상륜
한국 최초 전도인 서상륜
서상륜(1848~1925)은 1901년9월 9일자 '그리스도신문'에 자신의 기독교 개종사건을 회고하고 있다. "내가 이십칠년 전에 대청국 봉천성 우장당방 영구라 하는 항구의 여간 사소한 장사를 갔다가 뜻밖에 신병을 나서 거의 죽을 지경에 당하였나이다. 그때에 감사하신 그리스도께서 그곳에 있어 전도하시는 대영국 목사 마근태(매킨타이어)씨에게 감동하사 나를 객점에서 자기 집으로 옮기고 영국의사를 청하여 매일 이삼차씩 진병하며 복약하매 거의 두 주일 동안에 회생하였나이다. 그때에 나는 알지 못하였으나, 감사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때부터 나를 부르셨나이다. 그때 처음 마근태 목사에게 그리스도 예수씨 복음을 전해 듣고 성경책도 얻어 보았나이다."
평북 의주 출신 서상륜은 한만(韓滿)국경을 오가며 홍삼무역을 하던 장사꾼이었다. 이 무렵 만주에 주재하던 스코틀랜드장로회 선교사 로스(J. Ross)와 매킨타이어(J. MacIntyre)는 한국선교를 꿈꾸며 한국인 동역자를 구하고 있었다. 이들의 계획은 성서를 한국어로 번역·반포함으로써 한국선교의 결실을 보는 것이었다. 매킨타이어의 도움으로 장티푸스를 치료한 서상륜은 로스 성서번역팀에 합류했다. 당시 번역팀에는 이응찬, 백홍준, 김진기 등 의주 동향의 홍삼장수들이 참가하고 있었는데 학식이 높았던 서상륜의 가담으로 한글성서번역은 활력을 띠고 마침내 1882년 누가복음서가 한글로 간행되었다. 이들 번역자들은 스스로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개종자가 되고 또한 권서(勸書)전도자가 되어 조국 전도길에 올랐다. 서상륜은 1882년 10월 조국에 잠입해 기독교 금교(禁敎)하의 고난을 극복하며, 이른바 '서북 벨트'의 기독교 신앙공동체를 형성해 나갔다. 의주, 평양을 거쳐 연고가 있던 황해도 장연의 소래(松川)에서는 예배모임을 결성, 마침내 한국인 스스로의 최초 교회인 소래교회를 설립했다.
로스역(譯) 성서를 지니고 압록강 국경검문소를 넘다가 구금된 일, 제물포 세관에 압류된 성서를 독일인 외교고문 묄렌도르프의 도움으로 되찾은 일 등 다 헤아리기 어려운 난관 속에서도 서상륜은 자생적 신앙공동체를 형성해 나갔고, 이는 곧바로 내한한 미국선교사들의 선교활동과 연결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1887년 9월 27일 언더우드에 의해 14명의 세례교인으로 설립된 최초의 장로교 조직교회인 새문안교회는 바로 서상륜이 전도한 신도 대다수로 구성됐다.
서상륜은 이른바 한국프로테스탄트 '북방선교루트'(스코틀랜드장로교계)의 대표자로서, '남방선교루트'(미국개신교선교부)와의 연합을 이룩한 주축이었다. 교직도 갖지 않았던 그는 1925년 12월 16일 별세하였고, 그 아우가 최초의 한국인 장로교 목사 중 한 명인 서경조이며, 독립운동가 서병호, 서원석(대한성서공회), 서경석(목사) 등이 모두 그 후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