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청 서기 묘갈
고청 서기 묘갈(孤靑徐起墓碣)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조선 중기 학자 서기의 묘갈.
고청 서기 묘갈은 서기의 무덤 앞에 세운 작은 돌비석이다. 서기(徐起)[1523~1591]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이천서씨(利川)이며, 자는 대가(大可), 호는 고청(孤靑)·귀당(龜堂)이다. 서경덕(徐敬德)·이중호(李仲虎)·이지함(李之函)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전념하여 제자백가는 물론 기술의 이론까지 통달하였고, 선학을 좋아하였다. 홍천과 지리산·계룡산 근처로 옮겨 다니면서 오로지 학문과 강학에만 전념하였는데, 계룡산의 북쪽 고청봉 아래에서 강학을 하면서 충현서원을 창건하였다. 고청의 출신 배경에는 많은 이론이 있으나 대체로 서얼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충현서원에 별사로 제향되었다.
고청 서기의 묘소에는 총 4기의 비석이 있다. 그 중 묘소 중앙에 있는 고청 서기 묘갈은 1775년(영조 51)에 건립되었다. 비문은 친구인 박지화(朴枝華)가 짓고 묘지는 조헌(趙憲)이 썼으며, 행장은 고청의 5대손인 서행원(徐行遠)과 충청감사 홍계희(洪啓禧)의 주선으로 병계(屛溪) 윤봉구(尹鳳九)가 지었다.
서기의 묘(墓)와 묘비(墓碑)는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381번지에 있는 고청봉의 동쪽 사면 중턱에 있다.
비의 규모는 높이 125㎝, 폭 46㎝, 두께 24.5㎝이다. 그 후 이 묘갈이 오래되자 1935년 임간재에게 글을 부탁하여 묘갈명이 새롭게 세워졌다. 이 비는 1775년 세워진 묘갈 앞쪽에 있다.
묘소 우측에는 처음에 세운 묘비가 있는데, 비문에는 ‘고청거사서공기지묘(孤靑居士徐公起之墓)’라 하여 쓰여 있다. 이를 살펴보면 고청 사후에는 ‘거사(居士)’라 불렸음을 알 수 있다.
묘소 맨 좌측에 묘갈명이 낙후되는 것을 안타까워 한 후손들이 최근에 세운 묘갈명 1기가 세워져 있다.
서기의 가계와 생애에 대해서는 현재 전해지는 내용이 매우 소략하고 단편적이며, 문헌에 따라 서로 다른 경우가 많아 많은 부분이 분명치 않다. 그러하기에 이 묘갈은 서기의 생애를 알아보는데 더욱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