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현서원
충현서원(忠賢書院)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조선 중기 충청도 최초로 세워진 사액 서원. 공주시청에서 대전 방면으로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18㎞ 달리면 공암이 나온다. 대략 27분여의 시간이 소요되며, 충현서원은 마을의 중앙에 있다.
충현서원은 고청 서기에 의해 건립되었다. 서기는 출신적인 한계를 딛고 학문적 성과를 이룩한 인물로, 노년기에 이곳에 정착하여 사망하기까지 19년 동안 많은 제자를 가르쳤고, 공주의 사림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때 제자들과 당시 공주목사였던 초간 권문해가 서기가 제자를 가르치던 곳에 서원을 세워주자, 석탄 이존오, 한재 이목, 동주 성제원을 제향하였다. 이후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된 것을 1610년(광해군 2)에 중수하였고, 14년 후인 1624년(인조 2)에 공암서원에서 ‘충현(忠賢)’으로 사액받게 되었다. 당시는 서인이 인조반정을 통해 정권을 잡아, 명나라에 대한 사대가 강조되던 시기라 주자를 주벽으로 모시던 충현서원의 사액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사액을 받은 다음해 사우의 중건을 통해 서원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790년(정조 14)에는 대대적인 중수가 이루어졌으나,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훼철된다. 훼철 당시 주자 영정이 공주향교 존경각에 봉안되었다. 1917년에는 공주의 유림들이 단에 제향을 드리기 시작하였고, 1925년 옛터에 사우를 중건하였으며, 철폐되기 전에 제향되었던 이존오, 이목, 성제원, 조헌, 김장생, 송준길, 송시열의 위패를 복원하는 한편 별사(別祀)되던 서기도 함께 제향하였다. 현재의 충현서원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사당이 복원되면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으로, 훼철되기 이전에는 사당, 신문, 강당, 진수재, 천이재, 재실, 전사실, 직사, 홍전문 등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에는 사당과 신문(삼문), 강당, 수직사가 복원되어 있으며, 뒷면에 신문을 두고 사당을 배치하였으며, 앞면에 강당을 사당과 직각 방향으로 배치한 ‘전학후묘’식 배치를 하고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1고주 5량집 구조에 겹치마 맞배지붕 양식이며, 측면에는 풍판을 달았다. 강당은 1989년에 중건된 것이고, 신문(神門)은 정면 3칸의 솟을삼문 형식이며, 수직사는 1995년 지었다. 수직사는 목조 한옥을 모방하여 콘크리트 건물에 기와를 올린 형식이다. 1925년 복원된 충현서원은 1969년에 사단법인이 결성되면서 이사회를 통해 운영되어 왔고, 1989년에는 강당이 중건되었으며, 1994년에는 관리사가 신축되었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2기의 서원비, 하마석 등 많은 유물이 남아 있다. 충현서원은 공주와 지역의 사림 형성 과정과 사림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충청도 최초의 사액서원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