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문
서울독립문(─獨立門)
소재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941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있는 대한제국기 자주독립을 위해 세운 문(門). 석조문. 사적.
높이 14.28m, 너비 11.48m 크기의 문으로, 자주민권과 자강운동의 기념물이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이후 자주독립의 결의를 다짐하려고 중국 사신을 영접하여 사대외교의 표상으로 인식된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그 자리에 건립하였다. 곧 1896년(건양 1)에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徐載弼)은 독립협회를 조직하고서 독립문 건립을 발의하였는데, 그 뒤 고종 황제의 동의를 얻고 뜻있는 많은 애국지사와 국민들의 호응을 받아 1896년 11월 21일에 정초식(定礎式)을 거행하였다. 1년 뒤인 1897년 11월 20일에 완공하였다.이 문의 건축 양식은 서재필의 구상에 따라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본땄다. 다만 미적 배려가 부족하고 석재를 쌓는 수법도 이전의 성벽을 쌓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재필의 자서전에 의하면, 설계는 독일 공사관의 스위스인 기사가 하였고, 조선인 목수가 시공하였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경성부사(京城府史)』에는 러시아인 사바틴이 설계를 하고, 조선인 심의석(沈宜錫, 1854~1924)이 공사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문은 화강석 쌓기로 건립하였는데, 가운데 부분에는 홍예문(虹霓門)이 있고, 문 안쪽의 왼쪽에는 정상으로 통하는 돌계단이 있으며, 정상에는 돌난간이 둘러져 있다. 홍예문의 이맛돌에는 오얏꽃[李花] 문장이 새겨져 있고, 그 위의 앞뒤 현판석에는 각각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이라는 쓴 글씨와 함께 그 좌우에 태극기가 새겨져 있다. 문 앞에는 이전의 흔적인 서울 영은문 주초 2개(사적, 1963년 지정)가 서 있다.1917년에 수리공사를 하였고, 1928년에는 조선총독부가 받침 부분이 내려앉을 위험이 있다고 하여 공사비 4000원을 경성부에 위탁하여 크게 수리하기도 하였다. 당시에 벽체 안쪽에 새로운 재료로 강조한 철근콘크리트를 보강하였다. 1979년에 성산대로 공사로 인해 원래의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70m 떨어진 지점으로 옮겼다. 원래 자리에는 ‘독립문지. 이전일자 1979. 7. 13. 서울특별시장’이라고 새긴 가로·세로 각 70㎝ 크기의 기념동판을 묻었다. 이전공사는 1980년 1월에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