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서씨 일가 소장 자료
부여 서씨 일가 소장 자료(扶餘 徐氏 一家 所藏 資料)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광석리관련항목 보기 부여 서씨 일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고전적 및 고문서. [개설] 부여 서씨 일가 소장 자료의 소장자는 부여 서씨 29세손이자 정의공파(貞毅公派) 12세 종손인 서형관(徐炯寬)으로, 현재 고전적 8건, 고문서 38건 등을 소장하고 있다. 부여 서씨 17세손으로 정의공파의 파조(派祖)였던 육곡(六谷) 서필원(徐必遠)[1614~1671]과 그의 아들 서경조(徐敬祖)에 관련된 자료가 대부분이다. 서필원은 17세기 중후반에 중앙과 지방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로, 집권 세력인 서인(西人) 계열 내에서도 국왕 중심의 정치를 추구한 김육(金堉)의 한당(漢黨)에 속했다. 사림 중심의 정치를 추구한 송시열(宋時烈) 계의 산당(山黨)을 비판하는 데 앞장섰으며, 소론(少論)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후일 ‘정의(貞毅)’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부여 서씨 문중은 이러한 서필원의 공로를 인정해 정의공파라는 별도의 파(派)를 만들었다. [구성/내용] 부여 서씨 일가 소장 자료 중 고전적은 9건으로, 『육곡선생유고(六谷先生遺稿)』, 『인척가세계초(姻戚家世系抄)』, 『천녕유씨세계(川寧兪氏世系)』, 『가기(家忌)』, 『평성삼십소(平聲三十韶)』, 『난파(欄波)』, 『경홍신법(景洪神法)』, 행장(行狀)서필원, 무명책 등이다. 『육곡선생유고』는 서필원의 글들을 모아 만든 유고(遺稿)[문집의 한 종류]이고, 『인척가세계초』는 정의공파 문중의 혼인 관계를 정리한 것이다. 후자는 서필원의 직계 조상 및 후손들과 혼인 관계를 맺은 상대 집안의 가계를 족보 형식으로 정리한 책으로, 부여 서씨 정의공파 후손들에게 가문의 내력과 인척 관계를 가르쳐 자기 가문에 대한 자긍심과 문중 및 선조에 대한 존경심을 높일 목적으로 편찬되었다. 한편 고문서는 38건으로, 문서 종류별로 보면, 백패(白牌)[소과 합격증]·홍패(紅牌)[대과 합격증] 2건, 교지(敎旨)[관리 임명장] 36건이다. 인물별로, 서필원 관련 문서 18건, 서운기(徐雲驥)[서필원의 아버지] 관련 문서 3건, 서경조 관련 문서 16건, 서정덕(徐定德)[서필원의 손자] 관련 문서가 1건 등이다. 서필원의 교지[1635~1669]를 보면, 서필원이 문과 급제 이후 병조 참의, 승정원 좌승지, 경연 참찬관, 춘추관 수찬관, 예조 참의, 형조 참의, 사헌부 대사헌, 함경도 관찰사, 성균관 대사성, 사간원 대사간, 호조 참의, 황해도 관찰사, 형조판서, 중추 부사(中樞副使) 등 중앙과 지방의 요직을 두루 거쳤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도 후손은 여러 개의 선대 필적(筆跡)을 소장하고 있다.
부여 서씨 일가 소장 자료는 양주에 세거하던 부여 서씨 가문이 중앙 정계의 요직을 두루 거친 서필원을 기점으로 근기(近畿)의 유력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고, 정치적 성장, 혈연적 배경을 바탕으로 조선 후기 경기 북부 지역의 대표적인 사족 가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