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고서원
구고서원 추향제
단산면 사천1리에 소재한 구고서원은 단종때의 절신 돈암 서한정을 모신 서원이다.
서한정은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였는데 단종(端宗)이 손위(遜位: 왕위를 사양함)하고 세조(世祖)가 즉위하자 달성에서 가족을 이끌고 소백산(小白山)으로 들어가 은둔(隱遁)하였다.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추증되었고, 구고리사(九皐里社)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돈암일집(遯庵逸集)』 1책이 있다.
서한정의 학문에 대한 언급은 많이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권득평이 쓴 제문에는 “청아한 절개와 탁월한 행실[淸操卓行]이 있었다.”고 칭찬하고 있다. 가장(家狀)에서도 학문과 관련한 것으로는 “과거를 폐하고, 어버이를 섬김에 효를 다하고 거상(居喪)에서는 정성을 다하여 예에 따라 어김이 없었다.
밤낮으로 단정히 앉아서는 성리의 학문에 마음을 다하였다.”라는 기록 정도가 남아 있다. 여기서의 예는 당대 학자들이 모두 실천하고자 했던 『주자가례』로 보여진다.
이러한 구문을 통해 성리학을 체득하고, 몸소 실천하려 했던 조선 전기 학자의 모습을 서한정에게서도 잘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단종의 폐위와 함께 벼슬길을 접었던 그의 행적은 선비의 고고한 절개와 신하의 충을 실천한 것으로 후대에도 길이 남겨지게 되었다.
돈암 서한정을 배향한 서원으로 구고서원(九皐書院)이 있었으나 고종 때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거되어 구고서당(九皐書堂)이라는 현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현재 구고서원 현판과 여러 부속건물의 현판은 책실(冊室)에 보관하였었는데, 근래에는 소수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