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암의 윤스님
봉선암의 윤스님 제사를 모시는 부여서씨
매년 음력 3월 3일이면 부여 서씨들은 ‘윤스님’이라는 사람의 무덤 앞에서 제사를 지낸다. 그는 문중인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씨가와 혼인한 사람도 아닌 타인이지만 그에 대한 제사는 아주 오랜 세월 이어져왔다. 서승길씨는 윤스님이 정확하게 누구인지, 왜 이 사람의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등에 대한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다고 했다. 단지 지금까지 선조들이 해왔던 것이기에 앞으로도 귀찮거나 싫다는 생각 없이 계속적으로 지낼 것이라고 했다.
서승길 그러나 윤스님과 관련한 흔적들은 아직 태봉산 기슭에 남아있다. 봉선암이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곳에는 부여서씨들이 세운 추모비가 있으며 지금도 그곳에 가면 기와 파편들을 볼 수 있다. 봉암사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옛 기록과 관련해서는 『덕은현지(德恩縣誌)』에 ‘금지사(金山寺)라는 절터가 이곳에 있었다.’라는 것이 전부이다. 또한 문중에서는 서룡갑, 서호갑 형제와 윤스님과의 인연에 관련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서익에게는 서룡갑과 서호갑의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 두 형제는 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글 공부를 했다. 그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하루도 빠짐없이 시묘를 하며 죽은 부모를 살아계신 것처럼 지극 정성으로 모셨다. 그 때 서룡갑이 21살, 서호갑이 12살이었다. 두 형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밤낮으로 묘를 지켰는데 당시 절에 있던 스님이 그 모습에 감동해 절 이름을 ‘선영을 받드는 절’이라는 뜻으로 ‘봉선암’이라 고쳤다고 한다. 이후 스님은 죽으면서 부여서씨라면 자신의 제사를 잘 지내줄 것이라 생각하고 암자에 소속되어 있던 산 밑 암자 땅을 문중에 맡기며 귀찮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죽은 후 밥과 국이나 상에 놓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렇게 시작된 윤스님과 부여서씨들의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부여서씨 집안에서는 자신들의 선조를 모시듯 정성스럽게 그를 모시고 있다. 또한 1980년에는 문중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남겨진 절터에 윤스님의 추모비를 세우고 매년 음력 11월 11일에 지내던 것을 음력 3월 3일로 옮겨 제사를 지내고 있다. 또한 윤스님이 남겨 주었던 암자 땅도 지금까지 경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