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서씨열녀비

Encyves Wiki
Jwseo21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9월 26일 (월) 21:09 판 (새 문서: 부여서씨열녀비(夫餘徐氏烈女碑)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인천리관련항목 보기에 있는 일제강점기 부여 서씨의 열녀비. 부여...)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부여서씨열녀비(夫餘徐氏烈女碑)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인천리관련항목 보기에 있는 일제강점기 부여 서씨의 열녀비. 부여 서씨는 서옥훈(徐鋈勳)의 딸로, 소진철(蘇鎭喆)의 부인이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어질고 부모에 대한 효성이 남달라 주위에서 칭찬이 자자하였다. 13세에 소진철과 결혼한 후 시부모를 잘 모시고 남편을 지극히 공경하니 효부라고 칭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병에 걸려 자리에 누웠는데, 좋다는 약은 다 구하여 정성껏 간호했지만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부여 서씨는 남편의 뒤를 따르기로 결심하고 부모에게 불효함을 용서해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이에 1926년 부여 서씨 문중에서 부여 서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열녀비를 건립하였다.

양촌면사무소에서 남쪽의 인천교를 건너 지방도 697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800m 정도 가면, 도로변의 동쪽 은정자 아래에 부여서씨 열녀비가 있다. 도로변에 있는 휴게소 앞에 있어 비교적 보존이 잘 되고 있는 편이다.

부여서씨열녀비는 낮은 기단에 비신을 세우고 지붕돌[가첨석]을 올린 형태이다. 비신의 높이 130㎝, 너비 44.5㎝, 두께 18.5㎝이다. [금석문] 비의 앞면에 ‘열녀유인부여서씨지비(烈女孺人夫餘徐氏之碑)’라 쓰여 있다. 비문은 이사희가 찬하고, 김종호가 서하였다.

부여 서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문중에서 건립한 것으로 보아 당시 부여 서씨의 활발했던 사족 활동에 대해 알 수 있다. 부여 서씨는 당시 가야곡면 육곡리가 세거지로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인 양촌에까지 문중의 영향력을 넓혔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