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벌 귀족
문벌 귀족(門閥貴族)
고려를 이끌어간 주도 세력은 문벌 귀족이었습니다. 문벌 귀족은 5품 이상의 높은 관직에 올랐던 사람입니다. 이들은 지방 호족 출신으로 중앙 관료가 되어 고위직까지 오른 사람이거나 혹은 신라 6두품 계통의 유학자였습니다. 서희나 최승로 같은 인물을 예로 들 수 있지요. 서희는 이천 호족의 아들로 출세하였고, 최승로는 6두품 출신이었는데 고려에 와서 정치 주도 세력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들은 자손들까지 대를 이어 고위 관리가 됨으로써 문벌을 이루었습니다. 성종 이후가 되면 점차 기반을 다져 하나의 사회 계층으로 자리 잡이게 됩니다. 문벌 귀족은 지배층으로 여러 특권을 누렸습니다. 문벌의 자손들은 과거와 음서 제도를 통해 관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음서는 5품 이상의 고위 관리만 누리던 특혜였는데, 과거 시험을 보지 않고도 그 아들이나 사위, 조카, 손자를 관리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무시험 특별 전형으로 관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문벌 귀족은 관직에 따라 과전을 받았습니다. 또한 공음전이나 사전을 지급받았습니다. 관료는 나라를 위해 일한 대가로 전지와 시지를 받았는데, 그 밖에도 5품 이상의 귀족은 공음전을 받았습니다. 국가를 위해 중요한 업무를 수행한 공이 크기 때문에 더 많은 토지를 주었습니다. 이처럼 문벌 귀족은 여러 특권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문벌 귀족은 또한 최고의 귀족인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고자 했습니다. 왕실의 외척이 되면 가문의 명예일 뿐만 아니라 권력의 핵심부를 장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원 이씨(이자겸)는 수많은 왕비를 배출한 외척 가문이었습니다. 문종 때부터 인종 때까지 왕실의 외척으로 80여 년 동안 정권을 독점했습니다. 그 밖에도 해주 최씨(최충), 경주 김씨(김부식), 파평 윤씨(윤관)도 대표적인 문벌 귀족 가문이었죠. 또한 문벌 귀족끼리 서로 중첩된 혼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같은 문벌 귀족 사이에서만 혼인을 하여 자신들의 특권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고려 전기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문벌 귀족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문벌 귀족이 갖가지 혜택을 누리면서 정치와 사회를 주도했기 때문입니다. 그 전성기가 문종(1046∼1083) 시기입니다.
정치적으로 음서 제도, 경제적으로 공음전의 특권이 주어졌다. 왕실과의 혼인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였으며 무신 정변으로 몰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