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극
1924년~
자 자중(子中). 호 대암(大巖). 죽림(竹林) 서재승(在承)의 손자. 송평(松坪) 상봉(相鳳)의 아들. 정산(貞山) 김동진(金東鎭)의 문인.(������정산급문록(貞山及門錄)������) 현대운수(주), 삼양운수(주) 및 봉화레미콘의 대표를 역임함.
공은 1938년에 봉화소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3년과 1945년에 걸쳐서 도강서당(道岡書堂)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고 함.
공은 일향(一鄕)과 일도(一道) 단위에서 사회・정치・체육・산업활동 및 유림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음. 먼저, 공은 1972년에 영주읍 방위협의회 위원 및 영주시군사회단체협의회장이 되었고, 1973년에 영주군 번영회, 1977년에 영주번영회에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1973년부터는 소액심판조종위원을 맡았음. 1983년에는 안동교도소 교화위원과 영주시정 자문위원이 되고, 1984년에는 갱생보호회 위원이 되었음. 이후 꾸준히 시정자문위원과 보호회위원, 심판조종위원을 역임하고, 1981년과 1982년에는 각각 정책자문위원과 방위협의회 고문을 맡았음.
체육활동과 관련해서는 1973년에 영주체육회의 이사에 위촉되고, 1976년에는 올림픽추진위원회에서 활동하게 되었음. 또한 1984년에는 체육회 자문위원과 전국소년체전 지도위원을 맡았음. 정당 활동과 관련하여서는 1971년에 공화당 제7대 선거대책위원이 되고, 1978년에는 민주공화당 국회의원 선거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하였음. 산업 활동과 관련해서는 현대운수(주)와 삼양운수(주) 및 봉화레미콘의 대표 외에, 경북화물조합 이사(1973년), 산재보험체납보험료 정리위원(1979년) 등으로 활동하였음.
공은 정산(貞山) 김동진(金東鎭)의 문인록에 등재되었음. 1978년에는 유도회(儒道會) 경상북도 위원장이 되었고, 1982년에는 각각 ������한국씨족이천년사(韓國氏族二千年史)������와 ������전국유림명감(全國儒林名鑑)������의 감수위원으로 활동하였음. 1990년에는 유교진흥회 상임위원, 1993년에는 대한민국 윤리도덕회 중앙회 총재, 1996년에는 성균관 부관장을 맡았음. 지역에서는 소수서원과 순흥향교 등의 원임(院任)・교임(校任)을 맡아 유풍(儒風) 진작에 기여하고자 하였음.
공은 유도회중앙본부 부회장 및 경상북도 본부장으로서, 동향(同鄕)의 학자였던 동주(東洲) 김진수(金晉秀)의 ������동주문집(東洲文集)������의 서문을 작성하였음. 또한 영주의 대표적 누정인 가학루(駕鶴樓)를 중수한 전말을 담은 「가학루중수기(駕鶴樓重修記)」를 짓고, 순흥 금성단(錦城壇)의 역사와 유래 및 수리 전말을 기록한 「금성단수리기(錦城壇修理記)」 등을 짓기도 하였음.
아울러 위선사업의 일환으로, 자신의 증조부와 조부, 선친의 문집인 ������월영당문집(月瀛堂文集)������, ������죽림선생문집(竹林先生文集)������, ������송평문집(松坪文集)������을 정리하고 간행하였음. 특히 조부인 죽림 서재승의 항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새내에 백산서원(白山書院)을 건립하였음.
공은 경상북도지사, 대한적십자총재, 내무부장관, 법무부장관, 국무총리의 표창을 수차례에 수여 받았음. 유문집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