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袗) 등과 같은 고을의 명사(名士)들과 함께 서로 강마(講磨)하였고, 이상정(李象靖)과는 누차 만나고 또 많은 서신을 왕복하였음.

공은 유생들이 단계서원(丹溪書院)에서 거재(居齋)할 때에 훈장(訓長)으로 추대되어 유생들을 부지런히 가르쳐 계발시켜 주었으며, 다시 소수서원(紹修書院)의 강좌에 나가서 경전을 토론하니, 원근에서 소식을 듣고 찾아온 자들이 매우 많았음.

공은 만년에 몇 칸의 집을 지어 “주정(主靜)”이라고 명명하고, 좌우에 퇴계(退溪)의 유묵을 걸고 책상에 성현(聖賢)의 글을 놓아두고 항상 완미하였으며, 글 가운데 의미가 통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이해할 때까지 깊이 사색하기를 그만두지 않았음.

또한 ������대학(大學)������, ������중용(中庸)������에 더욱 힘을 써서 여러 해 동안 연구하면서, 「중용질의(中庸質疑)」를 저술하기도 하였고, ������수학계몽(數學啓蒙)������의 주석을 연구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풀어서 자질(子姪)들에게 보이기도 하였음.

또한 예서(禮書)에도 유의하여, ������가례(家禮)������의 편목을 나누고, 송대(宋代) 명현으로부터 우리나라 역대 유학자들의 변론에 이르기까지 뜻을 다해 수집하여 내・외편을 만들었음.(곧 ������가례집해(家禮輯解)������임. 후에 여기서 관례 부분이 ������관례고정(冠禮考定)������으로 출간되었음.)

문집이 간행됨. 이상정이 「梧山處士徐公行狀」을 찬하고, 채제공이 「處士徐公墓誌銘」을 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