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일
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서동일(徐東日)[1893~1965]은 1893년 12월 25일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서부리 23에서 출생했다.
서동일은 1923년 1월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망명하여 남형우(南亨祐)·배천택(裵天澤) 등이 무력 독립 투쟁을 위하여 조직한 국민당(國民黨)에 가입하여 재정 부장(財政部長)으로 활동하였다. 1924년 1월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국내로 잠입하여 경상북도 대구 일대에서 군자금 1,300여 원을 모집하여 베이징에 전달하였다.
1925년 4월 상하이 국민당에서 배천택(裵天澤)·김창숙(金昌淑) 등이 더욱 직접적인 행동을 감행할 목적으로 1925년 4월 베이징 마사묘(麻四廟)에서 다물단을 조직하였는데, 단원들은 정의부(正義府)의 김동삼(金東三)과 친밀했던 배천택과 한진산(韓震山)·서동일 등 영남 출신의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되었다.
서동일은 다물단의 선언서와 특파원 신임장을 휴대하고 1925년 5월 22일 베이징을 출발하여 1925년 5월 28일 청도를 경유, 경산군 자인면[현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에 이르러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이듬해 1926년 3월 31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및 공갈죄 등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서동일은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묘역의 연보 비문에는 “다물(多勿)이란 옛 땅을 회복한다는 뜻으로 용감(勇敢), 전진(前進), 쾌단(快團) 등의 뜻과 함께 불언실행(不言實行)을 의미한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