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재
정의
1968년 이후 부산에서 활동한 정치인.
활동 사항
서석재(徐錫宰)[1935~2009]의 본관은 달성(達成)이다. 1935년 2월 15일 경상남도 창원군 출신으로, 1955년 부산고등학교, 1961년 동아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85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수료하고, 1993년 일본 와세다대학교[早稻田大學校] 정치학과의 객원 연구원을 지냈다. 1961년 동아중고등학교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1968년 김영삼(金泳三) 신한민주당 원내 총무의 비서가 되어 정치에 입문하였다.
1974년 신한민주당 중앙당 조직 부국장과 국장을 지냈으며, 1980년 민주한국당 창당 발기인과 조직 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제11대 총선에 출마, 부산 서구에서 국회 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한국당 원내 부총무와 부산시 지부장을 지냈다. 제12대 총선에 김영삼이 정치를 재개하자 민주한국당 의원들을 이끌고 신한민주당에 입당, 같은 당 소속으로 국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85년 민주화운동추진협의회[민추협]의 상임 위원이 되었고, 1988년 제13대, 1992년 제14대 국회 의원 선거 때 부산 사하구에서 출마, 두 번 모두 당선되었다.
서석재는 김동영(金東英), 최형우(崔炯宇), 김덕룡(金德龍) 전 국회 의원과 함께 민주당 계열의 실세였다. ‘조직의 귀재’로 불렸던 서석재는 1992년 대통령 선거 때 기존의 불교 조직 외에 ‘나라사랑실천본부[나사본]’라는 새 조직을 만들어 이끌면서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힘썼다. 1989년 강원도 동해시 보궐 선거 때 국회 의원 후보를 매수한 것이 밝혀져 1993년 의원직을 상실하고, 장기간 외국에 나가 있는 등 정치적 시련도 겪었다.
1994년 민주자유당 당무 위원을 지내고, 김영삼 정권에서 제17대 총무처 장관으로 발탁되었다.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두 전직 대통령의 4,000억 원대 비자금 보유설을 발설하여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8개월 만에 장관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권력의 핵심에서 비켜나 민주계 중진 인사들의 모임인 ‘민주화세력모임’ 등에서 활동하며 김영삼을 후원하였다. 1995년 신한국당 부산 사하갑 지구당 위원장으로 제15대 국회 의원이 되었고, 1996년 국회 정각회 회장을 지냈다.
1997년 대통령 선거 때는 이회창(李會昌) 총재와의 갈등으로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이인제(李仁濟)가 이끄는 국민신당에 입당하여 최고 위원을 지냈다. 1998년 김대중(金大中) 정권이 들어선 후 이듬해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를 지냈다. 2009년 12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영원한 촌놈』[문학사상사, 1995]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