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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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6 ~ 1785 조선 문신, 서예가

조선 후기에 활동한 문신이자 서예가이다. 자는 중욱(仲勖) · 욱지(勖之), 호는 수헌(秀軒),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조부는 영의정 서종태(徐宗泰)이고, 부친은 좌의정 서명균(徐命均)이며, 형 서지수(徐志修)도 영의정을 지내 삼대에 이어 정승을 배출한 명문가 출신이다. 또 손자 서당보(徐堂輔)도 영의정을 지냈다.

그 자신은 1752년 돈녕참봉을 시작으로 여러 곳의 현감과 장성부사(長城府使) 등을 지내다가 1777년 온릉령(溫陵令)을 마지막으로 은퇴하였다.

일찍부터 글씨로 이름을 떨쳐 영조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1764년 어느 날 영조가 당시 예조판서이던 서명균의 아들 서무수의 글씨가 당금 제일이냐고 묻자 입시한 서명선(徐命善)이 다른 사람보다 조금 낫다고 답하며 진체(陣體)를 잘 쓴다고 아뢴 내용이 『승정원일기』에 보인다.

여기서 '진체(陣體)'는 '진체(晉體)', 즉 왕희지체를 가리킨다.

서무수는 후대에 김정희의 『완당집(阮堂集)』에서도 이광사와 함께 윤순의 제자로 언급되었다.

또 정원용(鄭元容)의 『수향편(袖香編)』 「논제필가서법(論諸筆家書法)」에는 "서무수의 글씨는 반쯤 갠 봄날 은일자가 채소밭을 가꾸는 듯하다."라는 서평이 붙어있기도 하다.

徐懋修書 如春陰半晴 幽人治圃

『수향편(袖香編)』, 「논제필가서법(論諸筆家書法)」

서무수의 필적으로는 《사신첩(斯晨帖)》(1781, 개인소장), <한퇴지석고가첩서발(韓退之石鼓歌帖序跋)>(일본 개인소장) 등과, 금석으로 <구암서원묘정비(龜巖書院廟庭碑)>(1758), <김재로묘갈(金在魯墓碣)>(1761) 등이 전한다.

이들 필적을 보면 같이 수학한 이광사와 비슷한 면모가 지배적이면서 부드럽고 단아한 특징이 보여 정원용의 서평이 수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