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가협회
현대미술가협회(現代美術家協會) | |
대표명칭 | 현대미술가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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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現代美術家協會 |
유형 | 미술인단체 |
창립자 | 김서봉, 김영환, 김종휘, 김창열, 김청관, 김충선, 나병재, 문우식, 이철, 장성순, 조동훈, 조용민, 하인두 |
창립시대 | 현대 |
창립일 | 1957년 |
해체일 | 1961년 10월 |
관련단체 | 60년미술협회, 악뛰엘 |
정의
1957년, 기성화단에 대한 도전으로 젊은 화가들이 창립한 미술단체이다.
내용
앵포르멜 회화
당시 화단은 대한미술협회와 한국미술가협회로 양분된 가운데 국전을 중심으로 대립과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20대의 젊은 서양화가들은 새로운 미술단체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에 성장하여 해방 후 설립된 미술대학을 한국전쟁기에 다닌 기성세대와는 다른 사회인식을 지닌 세대였다.
기성 미술계에 대한 비판과 저항은 시대정신을 담은 새로운 미술의 수립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당시 서구의 전위적 경향이던 앵포르멜을 기본 이념으로 1957년 5월 1일부터 5일까지 미국공보원(USIS)화랑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생겨난 앵포르멜 회화의 물질성과 비형태성을 한국전쟁으로 피폐된 시대의 감성을 표출할 수 있는 방안으로 받아들여 이전과는 다른 대형 화면에 그들의 회화적인 지향을 표현하였다.
추상미술의 확산
이를 계기로 한국에 추상미술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1960년 6회전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전시는 한국미술에 전위미술의 돌파구를 마련하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1961년 12월에는 4.19혁명 이후 급격히 변화된 사회 분위기에 따라 식어가던 앵포르멜 운동을 재확산하기 위해 '60년미술협회'와 연합전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1962년 미술이념과 행동윤리를 조율하기 위한 발전적 방안으로 아래 세대인 '60년미술협회'와 통합하여 보다 전위적인 단체인 ‘악뛰엘(Actuel)’을 결성함으로써 해산되었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현대미술가협회 | 앵포르멜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현대미술가협회 | 추상미술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현대미술가협회 | 악뛰엘 | A는 B의 전신이다 | A ekc:isOldNameOf B |
60년미술협회 | 악뛰엘 | A는 B의 전신이다 | A ekc:isOldNameOf B |
현대미술가협회 | 김충선 |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 A foaf:member B |
현대미술가협회 | 김서봉 |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 A foaf:member B |
현대미술가협회 | 박서보 |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 A foaf:member B |
현대미술가협회 | 안재후 |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 A foaf:member B |
현대미술가협회 | 하인두 |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 A foaf:member B |
현대미술가협회 | 정영렬 |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 A foaf:member B |
김서봉, 김영환, 김종휘, 김창열, 김청관, 김충선, 나병재, 문우식, 이철, 장성순, 조동훈, 조용민, 하인두
시각자료
갤러리
습작, 1959, 나무판에 유채, 121.9x121.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1]
원형질 1-62, 1962, 캔버스에 유채, 162x13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2]
자화상, 1957, 캔버스에 유채, 87.5x6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3]
주석
참고문헌
유용한 정보
- 웹 자원
- 조은정 "현대미술가협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조은정 "현대미술가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