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태안사
곡성 태안사 (泰安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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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곡성 태안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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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泰安寺 |
이칭 | 대안사(大安寺) |
주소 |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
문화재 지정번호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3호 |
문화재 지정일 | 1984. 2. 29 |
관리자 | 태안사 |
교구정보 |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 |
건립시기 | 742년(경덕왕 1) |
창건자 | 신승(神僧) |
경내문화재 | 곡성 태안사 광자대사탑, 곡성 태안사 광자대사탑비, 곡성 태안사 동종,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 곡성 태안사 청동 대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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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동리산(桐裏山)에 있는 절.
개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華嚴寺)의 말사이다. 대안사(大安寺)라고도 한다.
742년(경덕왕 1)에 3명의 신승(神僧: 능력이 뛰어난 승려)이 창건하였고[1], 신라의 혜철(惠哲, 785-861)이 중창하여 대안사(大安寺)라 하고 선풍을 일으킴으로써 동리산문(桐裏山門)이 형성되었다.[2] 919년(태조 2) 광자대사(廣慈大師) 윤다(允多)가 중창하여 132칸을 중장했다.[3] 고려 초에는 송광사·화엄사 등 전라남도 대부분의 사찰이 이 절의 말사였으나, 고려 중기에 송광사가 수선(修禪)의 본사로 독립됨에 따라 사세가 축소되었다.[4] 1023년(고종 10)에는 당시 집권자인 최우가 고쳐 지었다.[5] 조선시대에는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원당(願堂)이 되어 조정의 지원을 받았으며, 1683년(숙종 9) 정심(定心)이 중창하였고, 1737년(영조 13) 능파각(凌波閣)을 지었으나, 6·25전쟁 때 대웅전을 비롯한 15채의 건물이 불타버렸으며, 근래에 들어와 중창불사가 있었다.[6] 이 절은 1925년 최남선(崔南善)이 찾아와 "신라 이래의 이름 있는 절이요, 또 해동에서 선종(禪宗)의 절로 처음 생긴 곳이다. 아마도 고초(古初)의 신역(神域) 같다."고 극찬한 곳이다.[7]
경내에는 혜철의 부도인 적인선사조륜청정탑(보물 제273호), 윤다의 부도인 광자대사탑(보물 제274호), 광자대사비(보물 제275호), 승무를 출 때 사용하던 태안사대바라(보물 제956호), 태안사동종(보물 1349호), 태안사일주문(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3호), 태안사삼층석탑(문화재자료 제170호) 등이 있다.[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