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백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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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백겸(韓百謙) | |
대표명칭 | 한백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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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韓百謙 |
생몰년 | 1552년-1615년 |
본관 | 청주(淸州) |
호 | 구암(久庵) |
자 | 명길(鳴吉) |
대표저서 | 구암집(久菴集), 동국지리지(東國地理誌), 기자도(箕子圖), 기전설(箕田說) |
정의
내용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명길(鳴吉), 호는 구암(久菴). 정선군수 한승원(韓承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문천군수(文川郡守)한여필(韓汝弼)이고, 아버지는 판관 한효윤(韓孝胤)이며, 어머니는 예빈시정(禮賓寺正) 신건(申健)의 딸이다. 민순(閔純)의 문인이다.[민백]
조선의 학자. 자는 명길(鳴吉), 호는 구암(久庵). 본관은 청주(淸州). 어려서 배움에 힘썼으며, 민순(閔純)에게 《소학》과 《근사록(近思錄)》을 배웠고 계속하여 의리(義理)에 관한 연구에 힘써 육경논맹(六經論孟)과 염락관민(廉洛關閩)에 이르기까지 정통하였다. 1586년(선조 19) 천거에 의하여 중부 참봉(中部參奉)이 되고 곧이어 경기전(慶基殿) 참봉을 역임하였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 모반 때 연좌되어 귀양갔다가 임진왜란 때에 석방되어, 적소에서 적군에게 아부하여 난을 선동한 자들을 참살한 공으로 내자직장(內資直長)이 되었다가 여러 내외직을 거친 다음 호조 참의(戶曹參議)가 되었다. 선조가 죽자 대신들은 백겸이 예(禮)에 밝다 하여 빈전(殯殿)의 상례(喪禮)를 맡겼다.[1]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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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백겸 | 김응서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동국지리지 | 한백겸 | A는 B가 저술하였다 | A dcterms:creator B |
주석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웹자원
- 인명사전편찬위원회, 『인명사전』, 민중서관, 2002. 온라인 참조: "한백겸", 인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인명사전편찬위원회, 『인명사전』, 민중서관, 2002. 온라인 참조: "한백겸", 인명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