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씨부인 단자 (해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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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섭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11월 7일 (화) 18:55 판 (새 문서: {{도록해독문안내 |도록쪽번호= 172 }} center ==원문과 해석문== {{옛한글해독...)
본 기사의 해독문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2016년에 개최한 특별전 '한글, 소통과 배려의 문자(2016.6.29~12.31)'의 도록 172쪽을 참고 활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원문 중 옛 한글의 경우 웹브라우저 및 시스템의 문자세트(character set) 표현상 한계로 인해 표시가 불완전할 수 있으며, 각 내용상의 사소한 교정은 별도의 언급 없이 적용하였습니다. |
원문과 해석문
원문 | 해석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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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원문이미지 참고 | 이 언문 단자로 아뢰올 일은 소인 과부의 시보무께서 예산 등지의 객지에서 살았는데 지난 갑오년 무렵에 불행하게도 시어머니가 상사를 당하여 객지에서 무덤을 쓸 방도가 없어서 시아버지와 남편이 고향에 가서 동중(洞中)에 하소연하고 빌어서 본 면 모곡리에 선산 백호 기슭에 동중의 후의를 입어 허락을 받아 산소를 썻더니 |
상단 원문이미지 참고 | 지난 임인년 무렵에 또 불행하게도 시아버지 상사를 당하여 남의 산에 장사를 지내지 못하여 시어머니 산소를 파서 묘 터 한자리쯤 내려와 시부묘를 합장했더니 |
상단 원문이미지 참고 | 작년 무렵에 기운이 불행하고 팔자가 기구하여 남편의 상사를 당하여 보니 적당하게 묘를 쓸 자리를 간신히 (구해서) 땅에 묻은 후에 |
상단 원문이미지 참고 | 집안 시동생이 있는데 인품이 본래 좀 모자라 뜻하는 바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남편이 죽은 이 혈혈 과부가 의지할 데 없는 중에 무일푼의 빈손으로 살아갈 길이 없어서 고향으로 들어와 친산 기슭 아래에 일가 집 좁은 방을 얻어 일가의 후의를 입어서 근근이 스스로 독립하여 살아가고 |
상단 원문이미지 참고 | 시동생은 예산 등지에서 살더니 갑자기 이 과부의 시동생이 불측한 마음을 내어 친산 내의 뒷자락과 한 가래의 뮛자리를 쓸 만한 좁은 땅을 본 면후동에 사는 명반허에게 매매 흥정할 때 이 어린 과부의 어린 자식 이름을 도적질하여 주었다 하기에 |
상단 원문이미지 참고 | 놀랍고 두려워 일가의 의론하고 죽어도 장사를 못 지내도록 결정했더니 이 과부의 시동생이 사리에 맞지 않게도 명반을 동반하여 관부에 무고로 정소하니 이런 변고가 이 세상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
상단 원문이미지 참고 |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논하더라도 이 과부는 어린 자식과 매우 가난하여 조석밥을 먹지 못하여 차라리 죽을지언정 이런 마음 없사온데 하물며 남자가 되어 어찌하기로 못 살아 친산 뒷자락을 팔아야 살 수 있단 말입니까? |
상단 원문이미지 참고 | 이 과부의 집으로 논하더라도 이 과부가 종부이니 종부 모르게 이런 일 하며 소과는 죽어도 묘를 못 쓰게 할 터이니 명반이 고집하여 묘를 쓰면 이 과부가 죽어 내몸이 그 자리에 묻힐 터이니 |
상단 원문이미지 참고 | 하도 원통하여 현명하신 성주 합하님께 피눈물을 흘리며 진정하오니 깊이 헤아려 살피신 후에 과부의 시동생이 불측한 죄를 징계하여 다스리고 명반에게 묘를 쓰지 못하도록 엄정하게 통제하시기를 천만 번 엎드려 바라나이다. |
상단 원문이미지 참고 | 관장 성주 합하 처분 |
상단 원문이미지 참고 | 병오년(1906) 11월 일 |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