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응태 무고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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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샘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10월 27일 (금) 17:4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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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응태 무고사건(丁應泰 誣告事件)
대표명칭 정응태 무고사건
한자표기 丁應泰 誣告事件
유형 사건
시대 조선시대
날짜 1598년
관련인물 류성룡(柳成龍), 이항복(李恒福), 이정구(李廷龜)
관련단체 변무사(辨誣使)



정의

명나라 조사관 정응태(丁應泰)와 지휘관 양호(楊鎬) 사이에 내분으로 일어난 사건.

내용

1598년 명나라 조사관 정응태(丁應泰)가 '조선이 왜국을 유인해 명을 침략한다'는 무고(誣告)를 올려 파란이 일었다. 당시 이 오해를 풀기 위해 조정에서는 정승인 류성룡(柳成龍) 등 동인들을 사신으로 보내려 했으나 사태수습에 자신이 없던 류성룡은 이를 고사했다.[1]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조선은 1차로 7월 1일에 최천건(崔天健) 일행을, 2차로 8월 1일에 이원익(李元翼) 일행을, 3차로 10월 21일에 이항복(李恒福) 일행을 파견하였다.[2]

이항복이 이 사건으로 인해 명나라에 다녀오면서 기록한 『조천록(朝天錄)』에 의하면 정응태의 무고는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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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선의 군신들이 명나라 장수 양호와 결탁하여 천자를 기만하고 항거하려 하였다.
  2. 홰구를 유인하여 군사를 일으켜 중국을 범하고 요하를 탈취하여 고구려의 옛땅을 회복하려한다.
  3. 신숙주(申叔舟)의 『해동제국기(海東諸國紀)』에는 조선과 일본의 사신들이 서로 지극히 친절하다고 적혀있다.
  4. 연호를 기록함에 일본의 연호는 크게 쓰고 중국의 연호는 작게 표시하여 일본을 더 높이고 있다.
  5. 임금을 '태조(太祖)', '세조(世祖)'라하여 천자의 칭호와 같이 '조(祖)'자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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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緣田, 『Daum 블로그 - 경주(慶州 月城)이씨』, 조천록 상(上) 기문(記聞).[3]


결국 조선정부의 지속적인 노력과 이정귀(李廷龜)가 작성한 『무술변무주(戊戌辨誣奏)』의 논리로 해명에 성공하여 정응태를 파면시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4]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정응태 무고사건 정응태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정응태 무고사건 조천록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정응태 무고사건 변무사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정응태 무고사건 이항복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정응태 무고사건 이정귀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주석

  1. "이정구(1564년)", 『위키백과』online.
  2. 緣田, "조천록 상(上) 기문(記聞)", 『Daum 블로그 - 경주(慶州 月城)이씨』online, 작성일: 2010년 09월 21일.
  3. 緣田, "조천록 상(上) 기문(記聞)", 『Daum 블로그 - 경주(慶州 月城)이씨』online, 작성일: 2010년 09월 21일.
  4. 緣田, "조천록 상(上) 기문(記聞)", 『Daum 블로그 - 경주(慶州 月城)이씨』online, 작성일: 2010년 09월 21일.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유용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