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오천축국전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 |
대표명칭 | 왕오천축국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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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往五天竺國傳 |
유형 | 기행록 |
저자 | 혜초(慧超) |
저술시기 | 727년 |
시대 | 신라 |
수량 | 1권 1책 |
정의
신라시대 승려 혜초(慧超)가 지은 인도 여행기. 현재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내용
신라시대 승려 혜초(慧超)가 지은 인도 여행기. 완질이 남아 있지 않고, 일부분만이 현존한다. 1908년 3월 프랑스의 탐험가였던 펠리오(Pelliot,P.)가 중국 돈황(敦煌)의 천불동(千佛洞)에서 발견하였다. 원래는 3권이었던 듯하나 현존본은 그 약본(略本)이며, 앞뒤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카슈미르(Kashmir)·아프가니스탄·중앙아시아 일대까지 여행한 혜초의 경험을 토대로 당시 인도 및 서역(西域) 각국의 종교와 풍속·문화 등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다.
사료적 가치
현장(玄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나 법현(法顯) 불국기(佛國記) 등의 인도 여행기들은 육로기행과 해로기행(海路紀行)인 데 비하여 이 책은 육로와 해로가 같이 언급되고 있다는 점,
전술한 여행기는 6세기와 7세기의 인도 정세를 말해 주는 자료이지만 이 책은 8세기의 사료라는 점,
일반적인 정치 정세 이외에 사회상태에 대한 사료적 가치가 돋보인다는 점 등이 이 책의 사료적 가치를 말해준다.
내용적 특징
왕오천축국전은 노정, 자연지리 및 인문지리와 풍습, 불교의 성황 정도를 한문의 산문으로 적었다. 직접 경유한 곳은 '종(從)-지명', '방향-행(行)', '경(經)-숫자-일(日)[월月]', '지(至)-지명'의 형식으로 적었다.
우종차도란달라국(又從此闍蘭達羅國), 서행(西行), 경일월(經一月), 지일사탁국(至一社吒國). (다시 사란달라국에서 서쪽으로 한 달을 가서 탁사국[원문의 사탁국은 탁사국의 오기로 본다]에 이르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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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왕오천축국전 - 우리나라 기행문학의 효시, 노정기와 서정시의 만남",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
또한 왕오천축국전에는 다섯 수의 한시가 들어 있는데 형식이 완정할 뿐 아니라 서정적인 것들이 많다. 주제는 원만한 여행의 기쁨과 희망, 고국에 대한 그리움, 구도에의 불안감과 험난함 등 다양하다. 개중 신두고라국(新頭故羅國)에서 한 승려의 죽음을 목도하고 지은 시는 다음과 같다.
고향의 등불은 주인을 잃고 객지의 보배나무는 꺾이고 말았구나. 신령스런 그대 영혼은 어디로 갔는가 옥 같은 용모가 재가 되다니. 생각하면 슬픈 마음 간절하거니, 그대 소원 못 이룸이 못내 섧구나. 누가 고향 가는 길을 알리오 돌아가는 흰 구름만 부질없이 바라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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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왕오천축국전 - 우리나라 기행문학의 효시, 노정기와 서정시의 만남",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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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 왕오천축국전 | A는 B를 저술하였다 | 727년 |
폴 펠리오 | 왕오천축국전 | A는 B를 발견하였다 | 1908년 |
왕오천축국전 | 돈황석굴 | A는 B에서 발견되었다 | 1908년 |
왕오천축국전 | 파리국립도서관 |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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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년 | 혜초가 왕오천축국전을 저술하였다. |
1908년 | 폴 펠리오가 돈황석굴에서 왕오천축국전을 발견하였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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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33549 | 2.375798 | 왕오천축국전은 다산초당에 위치한다 |
주석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웹문서
- "왕오천축국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왕오천축국전",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왕오천축국전 - 우리나라 기행문학의 효시, 노정기와 서정시의 만남",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왕오천축국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