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 가례 차비관 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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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영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10월 6일 (금) 15:53 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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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 가례 차비관 발기
한글팀 왕세자 가례 차비관 발기01 내용.jpg
한자명칭 嘉禮時 各差備官件記
영문명칭 A record of the temporary office and officials who participated in the wedding ceremony of Sunjong
작자 미상
간행시기 1882년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청구기호 1685
유형 고문서
크기(세로×가로) 25.7×282.4cm
판본 필사본
수량 1장
표기문자 한글


정의

1882년(조선 고종 19년) 당시 왕세자였던 [[조선 순종]이 가례를 치를 때 친영동뢰연, 조현례에 참여한 차비관의 규모를 기록한 발기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1882년(조선 고종 19년)은 당시 왕세자였던 조선 순종가례를 치를 때 친영동뢰연, 조현례에 참여한 차비관(差備官)의 규모를 기록한 발기이다.

본 발기의 배면에 있는 "임오이월 가례시 각ᄌᆞ비관ᄇᆞᆯ긔>라는 기록을 통해 가례에 참여한 차비관의 명단을 확인할 수 있다. ᄌᆞ비는 차비(差備)를 일컫는 것으로 세자궁에 소속된 하인이다. 이들은 친영동뢰연시 의례에 사용될 기물을 담당하는 임시직이다.친영동뢰연은 모두 2월 21일에 거행되었다. 조현례는 22일에 거행되었는데 이 발기에는 대왕대비에 대한 조현례만 기록되어 있다.

이 때 참석한 차비관은 세자궁 배위, 빈궁 배위, 대왕대비전 시위로 구분되어있다. 배위는 세자궁과 빈궁을 모시는 자리를 뜻하는 것으로 그 자리에서 각 차비관의 역할에 따라 직무가 결정된다. 세자궁의 배위는 세자를 앞에서 인도하는 전인차비를 비롯하여 향을 전달하는 향차비, 달자인(達字印)을 담당하는 달자차비, 기러기를 담당하는 집안차비, 일산차비, 산선차비, 노연승차비, 수주정차비, 잔차비, 시접차비, 휘접차비, 집사, 홀긔, 동서창차비 등이 있으며, 빈궁배위는 세자궁과 달리 수식차비, 양산차비, 산선차비, 나주차비, 찬안차비 등이 있어 그 역할에 따라 차비관의 명칭이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발기

조선시대 국혼·명절·탄일·진찬·제향 등의 왕실 행사에서 소요될, 혹은 소요된 물품목록을 적은 문서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데, 문서의 제목에는 한글로 ''ᄇᆞᆯ기', '건긔', '단자', 한자로는 '발기(發記)', '건기(件記)', '단자(單子)' 등으로 적혀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왕실발기는 한지 두루마기에 쓰은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얇고 질이 떨어지는 종이에 메모하듯이 써 놓은 것들도 있다. [2]

조선 순종순명효황후 민씨 가례

왕세자 가례 차비관 발기는 1882년 조선 순종의 첫번째 가례(혼례)때 작성된 발기이다. 3차에 걸친 간택(揀擇:왕,왕자,공주의 배우자를 선택함)에서 민태호의 딸, 순명효황후 민씨가 뽑혔다. 가례(혼례)의 절차는 『국조오례의』를 따르고 있다.[3] 내용의 대왕대비는 효정왕후 홍씨를 말한다. 왕세자 가례(혼례)는 육례(六禮)의 절차로 진행된다. 즉 납채(納采: 신랑 쪽에서 혼인을 청하면 신부 쪽에서 이를 받아들이는 일), 납징(納徵: 신랑 쪽에서 신부 쪽에 예물을 보내어 혼약의 성립을 증빙하는 예식), 고기(告期: 신부 쪽에서 혼인날을 정해 신랑 쪽에 알림), 책빈(冊嬪: 빈(嬪)으로 봉하여 세우던 일), 친영(親迎: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예식을 올리고 신부를 맞아오는 일), 동뢰연(同牢宴:신랑과 신부가 마주 앉아 술잔을 나누는 일)을 차례로 거행한 뒤 조현례(朝見禮:가례 후 처음으로 왕과 왕비를 뵈는 일) , 묘현례(廟見禮:종묘에 참배하는 일)로 마무리한다. [4]

왕세자 가례 차비관 발기의 내용

왕세자 가례 차비관 발기친영동뢰연, 조현례에 참가하는 내인들의 명단으로 해당직무와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차비(差備)는 '채비' 또는 '자비'로 불리며 조선시대 궁중의식에서 임무를 맡은 사람을 말한다. [5] 배위(陪衛)는 세자나 세자빈을 시종하는 일이다. 왕이나 대비, 왕비를 시종하는 일은 시위(侍衛)라 한다. [6] 달자인은 달사(達辭:관리가 왕세자에게 올리던 문서)에 찍던 도장을 말한다. [7] 기러기는 친영 때 신랑이 신부의 집에 전하는 나무로 만든 기러기를 말한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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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 가례 차비관 발기 (해독)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순종 순명효황후 가례 왕세자 가례 차비관 발기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조선 순종 순종 순명효황후 가례 A는 B에 참여하였다 A edm:isRelatedTo B
순명효황후 민씨 순종 순명효황후 가례 A는 B에 참여하였다 A edm:isRelatedTo B
왕세자 가례 차비관 발기 조선 순종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왕세자 가례 차비관 발기 순명효황후 민씨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왕세자 가례 차비관 발기 친영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왕세자 가례 차비관 발기 동뢰연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왕세자 가례 차비관 발기 조현례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효정왕후 홍씨 순종 순명효황후 가례 A는 B에 참여하였다 A edm:isRelatedTo B
효정왕후 홍씨 조선 순종 A는 B의 선조이다 A ekc:hasDescendant B
순명효황후 민씨 조선 순종 A는 B의 아내이다 A ekc:hasHusband B
왕세자 가례 차비관 발기 차비관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왕세자 가례 차비관 발기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882년 왕세자 가례 차비관 발기가 저술되었다.
1882년 순종 순명효황후 가례가 시행되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39197 127.054387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왕세자 가례 차비관 발기를 소장하였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214쪽.
  2. 주영하, 「1882년 왕세자 척의 혼례 관련 왕실음식발기 연구」, 『고문서연구』48, 한국고문서학회, 2016, 339쪽.
  3. 안예영, 「1882(壬午)年 王世子 嘉禮 硏究-《가례도감의궤》와 〈궁중ᄇᆞᆯ긔〉 중심으로」, 『장서각』22,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 134-135쪽.
  4. 김봉좌, 「왕실 의례를 위한 발기(件記)의 제작과 특성-1882년 왕세자 가례를 중심으로-」,『서지학연구』65, 한국서지학회, 309-311쪽.
  5. 송방송, 『한겨레음악대사전』, 보고사, 2012. 온라인 참조: "차비", 한겨레음악대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6. "배위",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7. "달자인", 『네이버 국어사전』online.
  8. "관련자료설명", 조선왕실 관혼상제, 『문화콘텐츠닷컴』online, 2012. 온라인 참조:"관련자료설명", 문화원형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참고문헌

유용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