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백련사

Encyves Wiki
김사현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10월 6일 (금) 12:08 판 (새 문서: {{단체정보 |사진= |사진출처= |대표명칭=백련사 |한자표기=白蓮社 |영문명칭=Suseonsa |이칭= |유형=단체 |창립자=지눌 |창립시대= |창립일...)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백련사(白蓮社)
대표명칭 백련사
한자표기 白蓮社
영문명칭 Suseonsa
유형 단체
창립자 지눌
창립일 1190년



정의

정토왕생을 위한 염불수행을 도모하기 위하여 조직된 신행결사(信行結社).

내용

기원

백련결사가 최초로 일어난 것은 중국 동진(東晉) 때의 고승 혜원(慧遠)이 동림사(東林寺)에서 염불왕생을 결사하고 백련사라 함으로써 비롯되었다. 혜원은 처음 123인의 동지와 함께 재회(齋會)를 베풀고 향과 꽃을 올려 일제히 정업을 닦아서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기약하였으며, 20년 동안 산문 밖을 나오지 않고 수행하였다고 한다. [1] 《승사략(僧史略)》 하권에 보면, “진송(晉宋) 때 여산의 혜원법사가 심양(掛陽)에 화행(化行)함에 고사(高士)와 일인(逸人)이 동림(東林)에 잇따랐다. 모두 향화(香花)를 바치기를 원하였으므로 뇌차종과 종병·장전(張詮)·유유민·주속지(周續之) 등이 함께 백련화사를 만들어 미타상(彌陀像)을 세우고 안양국(安養國)에 왕생(往生)하기를 구하니 연사(蓮社)라 하여 사(社)의 명칭의 시초가 된다.”고 하였다.[2] 이러한 결사운동은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변천

신라시대에는 정토왕생과 관음신앙 등을 실천하는 각종 결사가 생겼다. 같은 이름의 백련결사는 오대산의 북대(北臺)에서 행하여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오대산 백련사는 나한당(羅漢堂)을 짓고 석가여래상과 오백나한상을 안치하여 낮에는 『불보은경(佛報恩經)』과 『열반경』 등을 읽고, 밤에는 열반예참(涅盤禮懺)을 행하였다고 한다. 이 결사에서는 『열반경』이 중시된 듯한데, 중국의 백련사가 『법화경』을 중시하였던 것과는 다르다.


지식관계망

"그래프 삽입"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수선사 지눌 A는 B에 의해 설립되었다 A ekc:founder B
수선사 무신정변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수선사 영천 거조사 A는 B에 있었다 A edm:formerLocation B
수선사 송광사 A는 B의 전신이다 A ekc:isOldNameOf B
수선사 혜심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A foaf:member B
수선사 몽여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A foaf:member B
수선사 혼원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A foaf:member B
수선사 천영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A foaf:member B
수선사 정혜쌍수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수선사 간화선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1. 민백
  2. "백련사", 두산백과

참고문헌

  • 신안식, "수선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수선사",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