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계주윤음 (해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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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2016년에 개최한 특별전 '한글, 소통과 배려의 문자(2016.6.29~12.31)'의 도록 및 2016~2017년에 진행한 금요강독회 중 어제계주윤음 (해독) 관련 '발표내용'을 참고 활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원문 중 옛 한글의 경우 웹브라우저 및 시스템의 문자세트(character set) 표현상 한계로 인해 표시가 불완전할 수 있으며, 각 내용상의 사소한 교정은 별도의 언급 없이 적용하였습니다. |
원문과 해석문
원문 | 해석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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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원문 이미지 참고 | 어제계주윤음[1] |
상단 원문 이미지 참고 | 대신과 경재(卿宰) 이하 백관에게 개유(開諭)하는 윤음[2]이라 |
상단 원문 이미지 참고 | 아! 나의 고굉(股肱)[3]과 경재와 나의 모든 관료는 모두 나의 타이름을 들어라. 아! 옛사람이 말하기를, “궁중에서 고계(高髻)[4]를 좋아하니, 사방에서 한자 높이로 한다.5)” 고 한다. 이전의 여러 신하들이 술을 삼가지 않았던 것이 진실로 나의 허물을 말미암은 것이며, 지금 백성이 명령을 따르지 아니함도 또한 나의 성실치 못함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이로 인하여 위로는 선조의 혼령[陟降]을 져버리고, 아래로는 패전(霈典)을 막히게 하였으니 진실로 나의 허물이요. 진실로 나의 허물이다. |
상단 원문 이미지 참고 | 어떻게 이것이 이른바 위로 선조의 혼령을 져버렸는가 하면, 한번 술을 금지한 이후에 매번 자성(慈聖)께서 잘하였다고 칭찬하는 하교를 받들었는데, 인산(因山)을 겨우 마치고 올해가 다 가지도 않았는데 헛되이 (금주를)그치지 않음이 없다. 심한 것은 모여서 술을 마시니 선조의 혼령께서 이것을 아신다면 나에게 “능히 금하였는가? 금하지 않았는가?” 라고 이를 것이다. 이것이 위로 선조의 혼령을 저버린 것이다. |
상단 원문 이미지 참고 | 어떻게 이것이 이른바 아래로 패전(霈典)을 막히게 한 것인가 하면, 아! 금년 봄의 대사(大赦)는 지난 문서에는 없던 것인데 금주를 범한 사람에 이르러서는 혹시 금령이 해이해질까 두려워하여 한결같이 모두 용서하지 않았다. 지금 처분을 내리려고 도류안(徒流案)을 가져다 보니 그 수가 천명에 이른다. 만약 금주법을 폐지하지 않으면 몇천 명에 이르게 될지 모르겠다. 이것은 곧 내가 가르치지 못하여서 백성으로 하여금 법에 빠지게 한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나도 모르게 두려웠다. 봄의 대사에서 그들을 석방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어찌 경사를 함께 하는 뜻이겠는가! 지금 비록 한결같이 모두 석방한다고 하더라도 어찌 사면에 더불어 한 것이겠는가! 이것이 소위 아래로 패전(霈典)를 막히게 한 것이다. 그 어찌 장차 무슨 낯으로 효소전에 삭제를 올리겠으며, 역시 장차 무슨 낯으로 새벽에 진전(眞殿)에 인사를 드리겠는가! |
주석
- ↑ 이 윤음은 『승정원일기』 영조 33년 10월 29일 기사와 『영조실록』 1757년(영조 33) 11월 1일자 기사에도 실려 있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영조는 이 윤음을 11월 1일 효소전(인원왕후의 혼전)의 삭제를 지낸 후 인정전에 모인 종친, 문무백관에게 공포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계주윤음”이란 제목으로 간행하게 하였다. 교서관 활자로 간행하여 3건은 영조에게 진상하고, 1건은 세자에게 진헌하고, 史庫·의정부·육조·한성부·사헌부·사간원, 팔도·三都(광주, 수원, 개성)에 보냈다. 영조는 윤음의 본문을 언해의 전례에 따라 한문본에는 한글로 토를 달고, 언해본도 뒤에 붙이도록 하였다.(『승정원일기』 영조 33년 10월 29일, 11월 3일)
- ↑ 윤음 : 윤음은 德音 혹은 絲綸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의 말씀’이란 뜻으로 폭넓게 사용되었으나, 문서 형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영조 때이다
- ↑ 고굉 : 고굉지신(股肱之臣). 『書經』 「益稷篇」, “臣作朕股肱耳目 予欲左右有民汝翼 予欲宣力四方汝爲"
- ↑ 고계 : 모발을 땋아 틀어 올릴 때 다리를 많이 얹어 높게 한 머리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