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집
태산집(胎産集) | |
대표명칭 | 태산집 |
---|---|
한자표기 | 胎産集 |
이칭 | 태산집요 |
유형 | 고서 |
저자 | 임원준 |
간행시기 | 1472년 |
시대 | 조선 |
목차
정의
1472년에 간행된 임원준이 산부인과에 대해 저술한 의서이다.
내용
태산집의 편찬과 소실
1434년 의관 노중례에 의해 『태산요록(胎産要錄)』편찬되었다. 이 책은 산모 당사자나 조산원 같은 보조 인력이 알아야 할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다.『태산요록』이 전문서로서 내용이 부족하여 『태산집』이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485년에 『경국대전』에서 의과시험 과목의 하나로 채택된다. 허준의 『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발문」을 보면 임진왜란을 거치며 소실된 의서 중 하나로 언급된다. [1] 『태산집』은 허준이 저술한 『언해태산집요(諺解胎産集要)』로 의료인을 위한 산과 전문의서라는 성격과 지위가 계승되었다. 그러나 허준은 『태산집』의 원문 자체를 인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
태산집의 저자
『태산요록(胎産要錄)』과 『태산집(胎産集)』은 같은 책으로 여겨졌다. 규장각 소장본이 유일본으로 알려져 있다가 1971년 일본 동양문고의 소장본 청주판본이 새롭게 알려졌다. 이 청주판본에서 전의감, 관상감 등 여러 기술직 관청의 관리선발에서 사용된 책들을 설명하는데, 여기에 “『창진집(瘡疹集)』과 『태산집』은 우리나라의 임원준이 간행했다.”고 하여 『태산집』의 저자를 임원준으로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3]
태산집의 의의
『태산집』는 조선시대 우리나라 사람에 의해 저술된 가장 방대한 규모의 전문 분과의서이다. 『태산집』 외에도 『産書』를 비롯한 산과 전문의서가 관주도로 여러 차례 간행된 것은 세종~중종 시기의 구급방과 창진방을 다룬 전문 의서들의 간행과 함께 눈여겨볼 점이다. 이들 의서를 통해 『의방유취(醫方類聚)』에 축적된 지식을 원천으로 하여 분과의학이 발전해나가는 양상을 볼 수 있다. 또한 허준이 3종의 언해서를 간행하기이전, 즉 『의방유취(醫方類聚)』 편찬 시기에 이미 '태산(胎産)', '구급(救急)', '창진(瘡疹:두창)'의 세 가지 분과의학이 국가에서 중요시하는 의학의 지위를 누리고 있음도 엿볼 수 있다. [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태산집 | 언해태산집요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임원준 | 태산집 | A는 B를 저술하였다 | 1472년 |
허준 | 언해태산집요 | A는 B를 저술하였다 | 1608년 |
의방유취 | 태산집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태산요록 | 태산집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노중례 | 태산요록 | A는 B를 저술하였다 | |
태산집 | 경국대전 | A는 B에 언급된다 | |
경국대전주해 | 경국대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임원준 | 경국대전주해 | A는 B에 언급된다 | |
태산집 | 경국대전주해 | A는 B에 언급된다 | |
구급방 | 경국대전주해 | A는 B에 언급된다 | |
창진집 | 경국대전주해 | A는 B에 언급된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472년 | 임원준 태산집을 저술하였다 |
1608년 | 허준이 『언해태산집요』를 저술하였다 |
주석
- ↑ 박훈평, 「새로 발견된 조선전기 의학서 《胎産集要》 연구」, 『장서각』36, 2016, 9-10쪽.
- ↑ 박훈평, 「새로 발견된 조선전기 의학서 《胎産集要》 연구」, 『장서각』36, 2016, 26쪽.
- ↑ 박훈평, 「새로 발견된 조선전기 의학서 《胎産集要》 연구」, 『장서각』36, 2016, 11쪽.
- ↑ 박훈평, 「새로 발견된 조선전기 의학서 《胎産集要》 연구」, 『장서각』36, 2016, 22쪽.
참고문헌
유용한 정보
- "400년만에 찾은 조선시대 산과 의학서 '태산집요'",
『연합뉴스』online , 연합뉴스, 2016년 11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