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신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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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영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9월 29일 (금) 19:53 판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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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환국(庚申換局)
대표명칭 경신환국
한자표기 庚申換局
이칭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시대 조선
날짜 1680년
관련인물 명성왕후, 김석주, 조선 숙종, 허적
관련유물유적 한산이씨 고행록
명성대비전유


정의

1680년(숙종 6) 남인(南人) 일파가 정치적으로 서인에 의해 대거 축출된 정치적 사건이다.

내용

경신환국의 발생

1680년 3월 19일 숙종허적의 조부인 허잠(許潛)에게 시호를 더하여 내려주는 것을 기념하는 잔치에 필요한 물품들을 넉넉하게 내려 주라고 명했다. 그런데 숙종은 허적이 이미 허락도 받지 않고 왕실 물품인 유악을 먼저 가져가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숙종은 크게 화가 났다. 숙종은 공조판서 유혁연(柳赫然), 광성부원군 김만기(金萬基), 신여철(吳始復)을 불러서 유혁연을 해임하고 김만기를 훈련대장에 신여철을 총융사로 삼는 급작스러운 인사개편을 단행했다. 허적의 세력인 윤휴민암(閔黯)의 삭탈관작과 귀양을 건의하는 상소가 올라왔고 숙종은 이를 허락하였다. 영의정에 김수항, 좌의정에 정태화, 도승지에 남구만(南九萬)을 임명함으로써 서인주도의 정국이 조성되었다. [1]

서인의 재집권

경신환국을 계기로 서인은 재집권에 성공하였으나, 곧 송시열을 중심으로 하는 노론과 윤증을 중심으로 하는 소론으로의 분립이 진행된다. 그 중 권력의 핵심을 차지한 것은 송시열과 ‘삼척’으로 불렸던 왕실의 외척, 즉 김석주김만기민정중의 연합 세력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9년 뒤 다시 남인계의 후궁 장희빈이 낳은 원자가 세자로 책봉되는 과정에서 몰락하고 남인이 다시 집권했다. 이 때 송시열김수항 등이 사사되는 기사환국이 일어나는데, 경신환국으로 사사된 허적윤휴는 다시 복권된다. 그리고 다시 5년 뒤에는 희빈 장씨가 사사되는 갑술환국이 일어나 노론과 소론이 재집권하게 된다. [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주석

  1. 이민정, "갑술환국", 『한국사콘텐츠』online, 국사편찬위원회
  2. 이민정, "갑술환국", 『한국사콘텐츠』online, 국사편찬위원회

참고문헌

더 읽을거리

  • 단행본
    • 지두환, 『숙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9.
    • 이건창, 『당의통략 : 조선시대 당쟁(黨爭)의 기록』, 자유문고, 2015.
  • 논문
    • 이상식, 「朝鮮後期 肅宗의 政局運營과 王權 硏究」,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5.
    • 오경택, 「17세기 政局動向과 南人系 宋尙周의 정치활동」, 『한국학논총』,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