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우-황산싸움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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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S김지선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9월 26일 (화) 00:4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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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우-황산싸움 관련 기사()
파일:민족기록화 일러 관련기사.jpg
김현승 일러스트레이터
대표명칭 오승우-황산싸움 관련 기사


정의

민족기록화 오승우-황산싸움 고증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은 기사

내용

오승우-황산싸움에서 계백이 입고있는 전복은 찰갑(札甲)으로, 일정한 크기의 작은 미늘을 수십 매에서 수백 매씩 가로 또는 세로로 엮어 만들어 활동성을 극대화킨 갑옷이다. 해당 갑옷은 삼국시대 이후 줄곧 사용[1]되었는데, 실제 백제시대 출토된 갑옷의 형태는 단갑

5세기 중엽 찰갑이 많이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곽재우는 그의 아버지인 곽월(郭越)이 명나라에 동지사(冬至使)로 갔을 때 황제가 하사한 붉은 비단의 철릭(帖裏)을 입고 정암진싸움에 임했다고 한다.

Quote-left.png 재우는 그 아비가 명나라 북경에 갔을 때에 황제가 하사한 붉은 비단 철릭을 입고서, 지금 장사(將士)들을 거느리고 의령현의 경내 및 낙동강 가를 마구 누비면서 왜적을 보면 그 수를 불문하고 반드시 말을 달려 돌격하니, 화살에 맞는 적이 많아서 그를 보면 바로 퇴각하여 달아나 감히 대항하지 못합니다. Quote-right.png
출처: 『선조실록』 선조 25년(1592년) 6월 28일. 온라인 참조: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의병이 일어난 일과 경상도 지역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조선왕조실록』online, 국사편찬위원회.[2]


철릭은 저고리와 치마가 연결되어 있는 형태로, 허리 아래를 넓게 한 치마에 잔주름이 잡혀 있는 것이 특징이다.[3] 그러나 김태의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속에 묘사된 곽재우철릭 형태의 군복을 입고 있지 않다.

전복의 복장이 사실과 다름. 이는 고구려벽화 신라의 토기유물, 조선시ㅐ드이 복식자료등을 미루어 볼 때 고쳐야 함.


병장들의 군복 관련 오류

왜군들은 붉은 옷을 입은 곽재우의 모습을 보고 그를 홍의 장군(紅衣將軍)이라 불렀는데, 곽재우는 이 점을 역이용하여 자신과 몸집이 비슷한 부하들을 가려 뽑아 붉은 옷을 입혀 자신으로 위장해 곳곳에 배치했다고 한다.[4]
그러나 실제 작품에는 모든 병장들이 붉은 군복을 입고 등장한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관련 기사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시각자료

가상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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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영상

주석

  1. "일정한 크기의...줄곧 사용" : 강유신, "비늘갑옷", 『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선조실록』 선조 25년(1592년) 6월 28일. 온라인 참조: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의병이 일어난 일과 경상도 지역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조선왕조실록』online, 국사편찬위원회.
  3. "철릭",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문화콘텐츠닷컴』online, 한국콘텐츠진흥원.
  4. "곽재우는 이 점을 역이용하여...배치했다고 한다." : "곽재우-홍의(紅衣) 장군, 민초들의 지킴이",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문화콘텐츠닷컴』online, 한국콘텐츠진흥원.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1. 사료
  2. 웹 자원

유용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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