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관
태화관(泰和館) | |
대표명칭 | 태화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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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泰和館 |
유형 | 근대건물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5길 29 |
관련단체 | 민족대표 33인 |
관련장소 | 태화빌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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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숨기기]정의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장소로, 인사동에 있던 요릿집인 명월관(明月館)의 별관인데, 남감리교회 재단에 인수되면서 헐려 현재는 12층의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건물이 들어서 있다.[1]
내용
명월관
명월관은 한말에 궁내부 주임관(奏任官) 및 전선사장(典膳司長)으로 있으면서 어선(御膳)과 향연을 맡아 궁중요리를 하던 안순환(安淳煥)이 1909년에 지은 요릿집이다. 명월관은 개점 초기부터 대한제국의 고관과 친일파 인물들이 출입하였으며, 후기에는 문인·언론인들과 국외에서 잠입한 애국지사들의 밀담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18년 명월관이 소실되자 안순환은 순화궁(順和宮: 지금의 종로구 인사동 194)에 명월관의 분점격인 태화관(太華館)을 차렸다가 뒤에 태화관(泰和館)으로 개명하였다.[2]
독립선언식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무렵 민족대표 29인은 주인 안순환으로 하여금 조선총독부에 미리 전화를 걸게 하여 이곳에서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식을 거행하며 축배를 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어 출동한 80여 명의 일본 경찰이 포위한 가운데 한용운(韓龍雲)이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고 나머지 민족대표들이 제창한 뒤 일본 경찰에 연행되었다.
태화빌딩
1921년 마이어스 선교사가 여성과 아동을 위한 '태화여자관'을 개관하였고, 1982년 수익사업을 위해 태화빌딩이 세워졌다. 현재는 11층에 태화복지재단 사무실이 들어서 있고 1층에는 민족대표의 독립선언 장면을 그린 민족기록화가 걸려 있다. 다만 최대섭 화백이 그린 관찬 민족기록화가 아니라 그 복제품이다. 빌딩 앞에는 삼일독립선언유적지 기념비와 동판에 새긴 기미독립선언문이 자리해 있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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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선언식 | 태화관 | A는 B에서 거행되었다 | A ekc:isPerformedAt B |
태화관 | 태화빌딩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태화관 | 명월관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태화관 | 3.1운동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태화관 | 독립선언식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태화관 | 민족대표 33인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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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71947 | 126.984824 | 태화관은 태화빌딩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유용한 정보
- "태화관 분점과 돈의동 명월관", 문화원형백과-한국 최초 조선 요릿집/명월관,
『네이버 백과사전』onli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