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수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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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교도
(受敎圖)
국립문화재연구소
대표명칭 수교도
한자표기 受敎圖
주제 관례
제작연대 19세기 전반
구성 1첩(총 26면)
크기 전체 크기 45.4 × 30.6㎝
그림 크기 45.4 × 61.2㎝
소장처 국립문화재연구소



정의

왕세자의 성인식인 관례의 절차를 그린 그림이다. 국가 의례인 오례(五禮)가례(嘉禮)에 해당하는 관례왕세자는 대략 10세 전후하여 관례를 치르는데, 의례의 시작으로여겨 엄숙하게 거행하였다. [1]

내용

해제

13폭 그림만으로 이루어진 화첩으로, 깔끔한 윤곽선과 선명하고 화려한 채색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지만, 그림의 내용을 제공하는 문자가 전혀 없어 화첩 내용 파악이 어려운 단점이 있다. 표지에 '受敎圖'라고 해서체로 써져 있어 왕세자관례를 그린 의식임을 추측할 수 있으며, 그림의 내용이 『국조오례의』의 관례와 부합해 왕세자 관례에 관한 도첩임을 알 수 있다.[2]

구성

〈임헌명빈찬의도(臨軒命賓贊儀圖)〉 : 1, 2면
이 정전에서 빈(賓)과 찬(贊)에게 왕세자관례를 행할 것을 명령하는 장면으로, 내용은 전교관이 선교하고 교서가 든 교서함을 빈이 받는 의식이다. 종친백관이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 서 있는 모습을 그렸다.[3]

〈세자수궁관급집사배도(世子受宮官及執事拜圖)〉 : 3, 4면
관례가 진행되는 장면으로, 동궁 처소에서 왕세자가 세자시강원 및 익위사 관원, 집사자들로부터 재배를 받는 의식을 그린 것이다. 동쪽에는 시강원 관원 및 집사관이 있고, 서쪽에는 익위사 관원들이 앉아있다.[4]

〈세자여이품이상답배도(世子與二品以上答拜圖)〉 : 5, 6면
종친 및 2품 이상의 백관이 당 안으로 들어오면 종친 및 문관은 북쪽, 무관은 남쪽이 절하는 위치로 가서 왕세자에게 재배(再拜)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5]

〈세자수삼품이하배도(世子受三品以下拜圖)〉 : 7, 8면
왕세자가 3품 이하 관원들에게 절을 받는 장면이다. 왕세자의 의자 주변을 호위한 세자시강원과 익위사 관원들과 3품 이하 백관이 그려져 있다.[6]

〈세자강계배사부빈객도(世子降階拜師傅賓客圖)〉 : 9, 10면
왕세자가 궁관과 집사관, 사부, 빈객을 맞이하는 의식을 그린 장면이다. 서쪽에 마련된 왕세자의 자리가 있고, 그 앞에 백관의 조복을 입은 사부가 절하는 모습을 그렸다.[7]

〈세자여주인답배도(世子與主人答拜圖)〉 : 11, 12면
왕세자와 의식을 주관한 주인이 서로 절하는 과정을 그렸다. 왕세자의 자리는 서쪽에 마련되었고, 동쪽에서 백관의 조복을 입은 주인이 홀로 절하고 있다. 왕세자가 재배하면 주인이 답하여 재배하는 모습이다.[8]

〈세자수교도(世子受敎圖)〉 : 13, 14면
왕세자는 빈(賓)이 왕명을 받들고 온 교서를 받는 의식을 그린 장면이다. 중앙에 왕세자가 서있는 자리가 있고, 계단 위에 교서가 담겨있는 교서함이 준비되어 있다. 교서함 서쪽에 서 있는 사람이 찬자(贊者)이다.[9]

〈세자승계입동서도(世子陞階入東序圖)〉 : 15, 16면
삼가례(三加禮)를 준비하는 동안 교서를 받은 왕세자가 계단 위로 올라가 협실로 들어가 기다리는 절차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당 안에 관례를 위한 복식이 담긴 함이 보이고 파란 위장 뒤에 왕세자가 대기하고 있다. 왕세자의 자리 동쪽에 있는 사람이 주인이고 북쪽에는 사(師)가 대기하고 있다.[10]

〈삼가도(三加圖)〉 : 17, 18면
왕세자에게 세 번 관을 씌우는 삼가례의 절차를 그린 장면이다. 주인이 왕세자를 자리로 인도하면 빈이 머리를 빗질하고 싸맨 후 첫번째 관인 강사포를 입고 나와 원유관을 씌워줌으로 왕세자의 상복을 갖춘다. 왕세자는 협실로 들어가 곤룡포를 갈아입고 나와서 두번째 관인 익선관을 씌워줌으로 왕세자의 조복을 갖춘다. 다시 협실로 들어가 면복을 입고 나와 세번째 관인 면관을 씌워줌으로 왕세자의 대례복을 갖추면 삼가례의 의식이 끝난다.[11]

〈세자수예도(世子受醴圖)〉 : 19, 20면
왕세자왕세자의 대례복인 면복을 입고 당 안의 자리에 앉아 감주를 받아 마시는 장면이다. 이 의식은 빈과 찬이 주관한다.[12]

〈빈자세자도(賓字世子圖)〉 : 21, 22면
빈이 왕세자에게 자를 내려주는 장면이다. 화면의 동쪽에서 서쪽을 바라보며 서 있는 사람이 행사를 주관하는 주인이다.[13]

〈조알의도(朝謁儀圖)〉 : 23, 24면
관례를 마친 왕세자에게 하례를 올리는 장면이다. 화면을 이분하여 아래는 하례장면 오른쪽은 왕세자가 대기하고 있는 장소를 그렸다.[14]

〈회빈객의도(會賓客儀圖)〉 : 25, 26면
왕세자 관례의 마지막 절차로 주인이 빈객에게 연회를 베푸는 장면이다. 『국조오례의』에 의하면 조알례 이전이여야 하나 여기서는 맨 마지막 절차로 그려졌다.[15]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수교도 관례 A는 B를 표현한다
수교도 왕세자 A는 B를 위한 의식이었다
수교도 국립문화재연구소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수교도 왕세자 A에 B가 등장하였다
수교도 A에 B가 등장하였다
수교도 백관 A에 B가 등장하였다

시간정보

시간 내용
19세기 전반 수교도를 제작했다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가상현실

주석

  1. 네이버 지식백과 '수교도'
  2. 박정혜, 「조선시대 왕세자와 궁중기록화」, 『조선왕실의 행사그림과 옛 지도』, 민속원, 2005, 39쪽.
  3.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조 행사기록화』, 국립문화재연구소, 89쪽.
  4.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조 행사기록화』, 국립문화재연구소, 93쪽.
  5.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조 행사기록화』, 국립문화재연구소, 95쪽.
  6.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조 행사기록화』, 국립문화재연구소, 97쪽.
  7.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조 행사기록화』, 국립문화재연구소, 98쪽.
  8.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조 행사기록화』, 국립문화재연구소, 99쪽.
  9.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조 행사기록화』, 국립문화재연구소, 100쪽.
  10.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조 행사기록화』, 국립문화재연구소, 101쪽.
  11.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조 행사기록화』, 국립문화재연구소, 102쪽.
  12. 국립문화재연구소,『조선왕조 행사기록화』, 국립문화재연구소, 103쪽.
  13.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조 행사기록화』, 국립문화재연구소, 105쪽.
  14.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조 행사기록화』, 국립문화재연구소, 107쪽.
  15.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조 행사기록화』, 국립문화재연구소, 109쪽.
  16.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17.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18.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19.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20.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21.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22.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23.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24.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25.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26.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27.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28.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조 행사기록화』,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 김문식, 김정호, 『조선의 왕세자 교육』, 김영사, 2003.
  • 김문식, 신병주 저, 『조선 왕실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2005.
  • 박정혜, 『조선시대 궁중기록화 연구』, 일지사, 2000.
  • 박정혜, 이예성, 양보경, 『조선왕실의 행사그림과 옛지도』, 민속원, 2006.
  • 신명호,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 돌베개, 2002.
  • 신명호, 『조선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 돌베개, 2002.
  • 신명호, 『조선의 왕: 조선시대 왕과 왕실문화』, 시공사, 1998.
  • 한영우, 『조선왕조의 儀軌-국가의례와 그 기록』, 일지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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