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도갑사 도선국사 수미선사비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 수미선사비 (靈巖 道岬寺 道詵國師 守眉禪師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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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 수미선사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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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tele for State Preceptor Doseon and Master Sumi of Dogapsa Temple, Yeongam |
한자 | 靈巖 道岬寺 道詵國師 守眉禪師碑 |
이칭 | 도갑사도선수미양대사비(道岬寺道詵守眉兩大師碑) |
주소 |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로 306, 도갑사 (도갑리)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제1395호 |
문화재 지정일 | 2004년 1월 26일 |
찬자 | 이경석(李景奭), 정두경(鄭斗卿), 이수인(李壽仁) |
서자 | 오준(吳竣) |
각자 | 미상 |
서체 | 해서(楷書) |
승려 | 도선(道詵), 수미(守眉) |
건립연대 | 165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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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道岬寺)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선각국사 도선(先覺國師 道詵, 827-898)과 조선시대의 승려인 묘각화상 수미(妙覺和尙 守眉)의 탑비.
내용
개요
전체 높이 약 4.8m, 폭 1.42m. 탑비는 귀부(龜趺), 비신(碑身), 이수(螭首)를 모두 갖춘 형태로, 도갑사(道岬寺)의 부도전(浮屠田) 부근에 건립된 보호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1]
이 비는 1636년(인조 14) 4월에 건립을 시작하여 17년 후인 1653년(효종 4) 4월에 완료되었다. 비문에 따르면 본래 이곳에 도선(道詵)의 고비(古碑)가 있었는데 비바람으로 글자가 마멸되고 귀부의 머리가 결락되는 등 훼손이 심하여 다시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영암 도갑사를 중창한 옥습대사(玉習大師)가 3년에 걸쳐 각 사찰에 다니면서 찬조를 구하는 한편, 신도들로부터 모금하고 한양까지 가서 비문을 청탁하였다. 비석에 사용된 돌은 전라도 관찰사의 도움으로 부역을 통해 여산(礪山)에서 운반해 왔으며, 돌이 도착한 이후 7개월 만에 공사가 완료되었다고 한다.[2]
귀부의 머리는 오른쪽으로 약간 튼 형태인데 입에는 상·하 8개의 이빨로 여의주를 꽉 물고 있는 형상이다. 등에는 전형적인 귀갑문 대신 평행 사선문(斜線紋)으로 정연하게 음각하였다. 비신은 귀부와 이수와는 달리 대리석으로 조성했다. 비신의 양 측면에는 운룡문(雲龍紋)이 가득 양각되었는데, 매우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마치 살아 있는 쌍룡이 구름을 타고 승천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수에는 운문 위에 2마리의 용이 각각 이수의 양끝을 물고 있는 형상을 지니고 있다.[3]
비문
지식관계망
"그래프 삽입"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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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도갑사 도선국사 수미선사비 | 영암 도갑사 | A는 B에 있다 | |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 수미선사비 | 도선 | A는 B를 위한 비이다 | |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 수미선사비 | 수미 | A는 B를 위한 비이다 | |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 수미선사비 | 이경석 | A는 B가 비문을 지었다 | |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 수미선사비 | 정두경 | A는 B가 비문을 지었다 | |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 수미선사비 | 오준 | A는 B가 비문을 썼다 |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 ↑ 최인선, "도갑사도선수미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최연식, "영암 도갑사 도선 국사·수미 선사비",
『디지털영암문화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ㆍ수미선사비",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