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각순-산업선전철
지하철 | |
작가 | 박각순 |
---|---|
제작연도 | 1975년 |
규격 | 300호(197x290.9cm) |
유형 | 건설/교통 |
분류 | 유화 |
소장처 | 미상 |
목차
정의
산업선전철 중 석탄, 시멘트, 목재 등을 대량 수송하는 영동선 전철[1]을 담은 박각순 화백의 민족기록화.
산업선 전철화 공사는 1969년 9월 12일에 중앙선(청량리∼제천, 155.2㎞)을 시작으로, 태백선(제천∼정선, 107.9㎞), 영동선(철암∼북평, 85.5㎞) 등 모두 320km에 이루어졌는데, 5백 2억원을 투입하여 6년 3개월만에 완성되었다.
이로써 산업선전철[2]은 전국 철도 화물 수송량의 40퍼센트를 감당하게 됐으며 5,300 마력의 전기기관차를 움직여 전철 구간은 일반 철도의 복선구간과 거의 같은 효과를 가져오게 됐고,[3] 전국 대부분 지역을 전철이 자유롭게 운행할 수 있게 되었으며, 철도의 열차운용효율 및 수송능력은 크게 개선되었다.[4]
설명
작품 소재
작품 소재는 목재와 석탄을 싣고 있는 영동선 전철로, 1972년 12월 6일 전철화 공사가 시작되어, 3년간 연인원 54만명과 내자 24억원, 외자 8백만달러 등 총 62억원의 공사비가 들었다.
중앙선-태백선-영동선은 심한 경사도와 곡선 및 1백3개나 되는 터널 등 산악지대를 관통하는 나쁜 조건을 가졌으나, 화물수송량은 전국철도의 40%를 차지하고, 영동 지방에서 생산되는 무연탄, 시멘트, 광석 등 산업물자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를 보여 전철화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었다.
1975년 12월 5일 영동선의 전철화 공사가 완료되면서 전철 운행이 하루 10회 늘어나게 되었고, 연간 8백 65만t이 늘어난 2천 5 백72만t을 수송할 수 있게 되었다.[5]
영동선 전철은 강원 태백산지에 매장되어 있는 풍부한 지하자원을 수송하면서 지역개발은 물론 산업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였으며, 지금도 시멘트와 석탄 등의 지하자원을 전국으로 운반하면서 운송 분야에서도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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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관계망
추후 제작 및 삽입 예정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박각순 | 박각순-산업선전철 | A는 B를 그렸다 | 1975년 |
박각순-산업선전철 | 영동선 전철 |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 |
국회사무처 | 박각순-산업선전철 | A는 B를 대여하였다 | 1991년 1월 8일-1992년 1월 7일 |
전기철도 | 영동선 전철 | A는 B를 포함한다 | |
영동선 전철 | 영동선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영동선 전철 | 산업선전철준공기념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산업선전철준공기념비 | 동해역 | A는 B에 위치한다 | |
철도기념물 | 산업선전철준공기념비 | A는 B를 포함한다 | |
동해역 | 영동선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975년 | 박각순이 박각순-산업선전철를 그렸다 |
1991년 1월 8일-1992년 1월 7일 | 국회사무처가 박각순-산업선전철를 대여하였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532103 | 126.914133 | 국회사무처가 박각순-산업선전철을 대여하였다 |
관련 민족기록화
시각자료
가상현실
추후 제작 및 삽입 예정
갤러리
영상
주석
-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민족기록화 경제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3년, 47쪽.
- ↑ 전철은 수송목적에 따라 시가지전철, 도시전철, 교외전철, 도시간전철, 간선전철, 산업선전철 등으로 구분된다.
- ↑ 김봉선, "영동선, 전철로 완전개통", 『동아일보』, 1975년 12월 05일.
- ↑ "전기철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영동선 전철 개통", 『중앙일보』, 1975년 12월 05일.
- ↑ "전기철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