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영암 도갑사

Encyves Wiki
최한샘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5월 17일 (수) 14:16 판

이동: 둘러보기, 검색
영암 도갑사
(靈巖 道岬寺)
대표명칭 영암 도갑사
한자 靈巖 道岬寺
주소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
문화재 지정번호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79호
문화재 지정일 1984년 02월 29일
소유자 도갑사
관리자 도갑사
교구정보 대한불교조계종
건립시기 신라시대
창건자 도선
경내문화재 영암 도갑사 해탈문, 영암 도갑사 석조여래좌상, 영암 도갑사 목조문수·보현동자상,영암 도갑사 도선수미비, 영암 도갑사 석조, 영암 도갑사 오층석탑, 영암 도갑사 수미왕사비, 영암 도갑사 석장승, 도갑사 수미왕사진영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월출산(月出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해남 대흥사(海南 大興寺)의 말사이다.[1]

내용

신라 말기에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도갑사 자리에는 먼저 문수사라는 절이 있었고 어린 시절을 문수사에서 보낸 도선이 나중에 그 터에 절을 다시 지은 후 도갑사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고려 때 크게 번창하여 전성기를 누렸다고 하며, 1457년(세조 3년) 수미대사(守眉大師)신미대사(信眉大師)가 중건하였다. 1473년(성종 4년)에 중수한 적이 있고 임진왜란 때 불탔으며 1776년(영조 52년)에 다시 중수했다. 근래에도 한국전쟁과 실화 등으로 여러 차례 화재를 입었다. 현재의 대웅전은 1980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지금은 해남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며 경내에 해탈문을 비롯하여 대웅전, 명부전, 미륵전과 요사채 등 건물이 있고 수미왕사비도선수미비, 석조여래좌상, 오층석탑석조 등이 있다.[2] 도갑사는 966칸의 드넓은 사찰로 1,000여 명의 승려가 수도생활을 하고 부속 암자의 숫자만도 열두 곳에 이르는 대사찰이었다. 숭유억불 정책으로 대부분의 사찰이 승려 없는 빈 터만을 남기고 있었던 조선 초기의 상황이니 당시 이곳의 규모와 그 영향력을 실감하게 만드는 이야기다.[3]

전해지는 이야기

도선의 어머니 최씨(崔氏)가 빨래를 하다가 물 위에 떠내려오는 참외를 먹고 도선을 잉태하여 낳았으나 숲 속에 버렸다. 그런데 비둘기들이 날아들어 그를 날개로 감싸고 먹이를 물어다 먹여 길렀으므로 최씨가 문수사 주지에게 맡겨 기르도록 하였으며, 장성한 그가 중국을 다녀와서 문수사 터에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4]

지식관계망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880년 도선이 도갑사를 창건하였다.
1457년 수미가 도갑사를 중건하였다.
1653년 영암 도갑사 수미왕사비가 세워졌다.
1677년 영암 도갑사 도선수미비가 세워졌다.
1984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79호로 지정되었다.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영암 도갑사 해탈문 영암 도갑사 A는 B에 있다
영암 도갑사 석조여래좌상 영암 도갑사 A는 B에 있다
영암 도갑사 목조문수·보현동자상 영암 도갑사 A는 B에 있다
영암 도갑사 도선수미비 영암 도갑사 A는 B에 있다
영암 도갑사 수미왕사비 영암 도갑사 A는 B에 있다
영암 도갑사 오층석탑 영암 도갑사 A는 B에 있다
영암 도갑사 석조 영암 도갑사 A는 B에 있다
영암 도갑사 석장승 영암 도갑사 A는 B에 있다
영암 도갑사 수미왕사진영 영암 도갑사 A는 B에 있다
영암 도갑사 수미왕사비 수미 A는 B를 위한 비이다
영암 도갑사 도선·수미비 도선, 수미 A는 B를 위한 비이다
영암 도갑사 도선·수미비 이경석, 이수인, 정두경 A는 B가 비문을 지었다
영암 도갑사 도선·수미비 오준 A는 B가 비문을 썼다
도선 영암 도갑사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시각자료

영상

주석

  1. 정병조, "도갑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 5 - 전남』, 2010. 온라인 참조: "도갑사",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3. 최정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마로니에북스, 2010. 온라인 참조: "도갑사",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4. 정병조, "도갑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