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섭-인천항도크
정창섭-인천항도크 | |
작가 | 정창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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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연도 | 1975년 |
규격 | 300호(197x290.9cm) |
유형 | 건설/교통 |
분류 | 유화 |
소장처 | 미상 |
목차
개요
인천항 도크는 인천항 제1도크와 인천항 제2도크로 이루어져 있는데, 해당 작품은 수문을 중심으로 인천항 제2도크에 접안한 웅장한 선박을 담고 있다.[1] 인천항 제1도크는 일제시대인 1911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18년 10월에 완성되었다. 동양에서 보기 드문 갑문식 도크로, 4,500톤급 선박이 접안할 수 있게 되었고, 연간 하역 능력이 130만톤에 달하게 되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7061&cid=46632&categoryId=46632 그 뒤 일본은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8,000톤급 선박을 대상으로 하는 인천항 제2도크 건설을 1935년에 착공하였으나, 1943년까지 물막이 공사와 안벽 기초 공사 일부 등 약 30%의 공정만이 진척되었을 뿐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당시의 인천항은 외항과 내항으로 나눌 수 있었는데, 외항인 월미도 서측 해면에는 항로를 겸한 외항 묘박지(錨泊地) 29기가 있어 대부분의 대형 선박은 이곳에서 해상 이중 하역을 하고 있다. 내항은 제1잔교 전면 정박지로 가용 면적은 0.5㎢ 에 불과하며, 수심도 소형선이 정박할 정도였다.
종전 후 인천항은 1974년 갑문 선거가 완공되면서 그해 우리나라 최초의 컨테이너 부두인 ‘내항 4부두’가 개장하는 등 항세가 급속히 성장하였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7061&cid=46632&categoryId=46632
1974 대형 선박 25척이 부두까지 들어와 하역을 할 수 있게 됨 이로써 인천항에서 조수간만의 차에 구애받지 않고 대형 선박 출입 가능하게 됨
2009년 현재 주요 항만 시설로 인천항 갑문은 최대 5만톤급 선박이 입출거할 수 있으며, 갑문식 도크로는 동양 최대규모이다. 선박이 인천항 선거내를 드나들 수 있는 통로는 5만톤급 선박이 통과할 수 있는 갑거와 1만톤급 선박이 통행할 수 있는 2기의 갑거로 구성되어 있다. 안벽은 1만 3,046m, 방파제 2,233m, 물양장 2,059m, 잔교 22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박접안능력은 89척에 달하며 10만톤급 2척, 8만톤급 3척, 6만톤급 2척, 5만톤급 22척, 1만∼5만톤급 33척, 1만톤급 미만이 27척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천항 [仁川港]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1도크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96180&cid=49209&categoryId=49209
설명
작품 소재
작품 배경
인천항
작품 구도
시각적 안내
관련 민족기록화
관련항목
노드 | 관계 | 노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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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섭-인천항도크 | ~에 의해 그려지다 | 정창섭 |
시간정보
중심 | 시간정보명 | 시간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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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섭-인천항도크 | 제작연도 | 1975년 |
총무처 | 소장처 | 1979년 |
인천시민회관 | 소장처 (임대) | 1991년 |
공간정보
중심 | 연결정보 | 공간정보이름 | 경도 | 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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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섭-인천항도크 | 소장처 | 인천항 | 37.463812 | 126.625059 |
그래프
참고문헌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민족기록화 경제편』,1992년
주석
-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민족기록화 경제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3년, 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