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관 수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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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관 수표 | |
영문명칭 | A check issued to the Yun family of Haenam by Yi Byeonggw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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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 | 이병관 |
작성시기 | ? |
간행시기 | 조선후기 |
소장처 | 장서각(해남윤씨 녹우당 제공) |
유형 | 고문서 |
크기(세로×가로) | 31×22.5㎝ |
판본 | 필사 |
수량 | 1章 |
표기문자 | 한글, 한자 |
정의
8월 12일에 이병관이 해남윤씨 댁에 돈을 납부할 것을 약속하며 발급한 수표手標이다.
내용
8월 12일에 이병관이 해남윤씨 댁에 돈을 납부할 것을 약속하며 발급한 수표手標이다. 이병관은 먼저 지난 무신년에 거두어들이지 못한 것을 탕감해 준 은혜에 감사하였다. 이어서 기유년 7월에 거두어 들이지 못한 9결 4속, 경술년에 거두어들이지 못한 15속, 싹의 가격인 2결 4속을 합한 159냥을 8월까지 납부할 것을 약속하는 내용으로 수표를 작성하였다. 문서의 말미에는 거두어들이지 못한 보리 39되를 추가로 기재하였다.[1]
부연설명
이병관은 1842~5년간의 맹골도 1차 거납운동(조세납부 거부 운동)을 주도적으로 진행했던 인물이므로 이 자료에서 언급되는 무신년과 기유년은 각각 1848년(현종 14), 1849년(현종 15)임을 알 수 있다.[2] 조선 왕실은 화폐 유통에 꾸준히 노력을 기울여왔고 이는 영, 정조대를 거쳐 19세기에 접어들며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두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관에 내는 조세에 해당하는 경우였고 지주-소작인과 같이 사적으로는 여전히 물품이 화폐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자료는 이병관이 그간 미납했던 세납을 금전으로 환산하여 납부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수표(手標, 手記:대차, 기탁등의 약속과 같은 경우에 주고받는 증서)로서 19세기 중엽부터 사가(私家)에서 화폐가 통용되기 시작함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시각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전시 [1] 한글전시도록
관련 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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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관 | 이병관 수표 | A는 B를 저술했다 | |
이병관 수표 | 해남윤씨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시간정보
시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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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 이병관이 이병관 수표를 작성하여 해남 윤씨에게 보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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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9197 | 127.054387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이병관 수표이 소장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