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건학
서건학(徐乾學)
출생 - 사망 1631년 ~ 1694년
청나라 강남(江南) 곤산(崑山) 사람. 자는 원일(原一)이고, 호는 건암(健庵)이며, 시호는 문공(文恭)이다. 고염무(顧炎武)의 생질이다. 강희(康熙) 9년(1670) 진사(進士)가 되어 편수(編修)에 임명되었다. 시강학사(侍講學士)와 예부시랑(禮部侍郞) 등을 거쳐 형부상서(刑部尙書)에 이르렀다. 박학다식하여 경학은 물론 사학(史學), 여지(輿地), 예제(禮制) 등에 정통했다. 동생 서병의(徐秉義), 서원문(徐元文)과 함께 고관에 올랐다. 일찍이 황제의 명령으로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와 『청회전(淸會典)』, 『명사(明史)』 등을 편찬했다. 고사기(高士奇), 왕홍서(王鴻緖) 등과 서로 동조하면서 친척이나 문객들이 모두 뇌물을 받아먹고 사익(私益)을 추구하며 횡행하여 여러 차례 탄핵을 받았다.
그러나 파직된 뒤에도 황제의 명령으로 서국(書局)을 관리했다. 의리학(義理學)에 있어서는 정주학(程朱學)을 존숭하고 육왕학(陸王學)을 배척했다. 경설(經說)에 있어서는 고주(古註)를 중심으로 했지만 송원(宋元) 시대의 설도 아울러 취했으며, 당나라 때부터 명나라에 이르는 경설(經說)을 모아 『통지당경해(通志堂經解)』를 편찬했다. 예학에도 정밀하여 역대 상례(喪禮)의 제도와 제유(諸儒)의 학설을 모으고 자신의 설명을 덧붙여 『독례통고(讀禮通考)』 120권을 완성했다. 그 밖의 저서에 『감고집람(鑒古輯覽)』과 『고문연감(古文淵鑒)』, 『전시루서목(傳是樓書目)』, 『담원집(憺園集)』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