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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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열재(自怡悅齋)

풍석문화재단은 2019년 11월 26일 전주 한옥마을 향교길에 풍석 서유구(1764~1845)를 기리는 기념관 ‘자이열재(自怡悅齋)’를 문열었다.

이곳은 서유구의 업적과 면모를 잘 보여주는 15개의 에피소드와 백과사전 ‘임원경제지’ 음식 분야 저술인 ‘정조지’에 나온 음식을 소개하고 전라감영 일기 ‘완영일록’ 등을 전시하고 있다.

‘스스로 즐거워하는 집’의 의미를 가진 ‘자이열재’는 중국 양나라 때 도홍경(452~536)의 시 ‘산중하소유(山中何所有)’로부터 비록된다. ‘山中何所有(산중하소유, 산중에 무엇이 있느냐고요), 嶺上多白雲(영상다백운, 산마루에 흰 구름이 많이 있지요), 只可自怡悅(지가자이열, 단지 스스로 즐길 뿐이며), 不堪持贈君 (불감지증군, 그대에게 갖다 줄 순 없지요)’

양(梁)나라 무제(武帝) 소연(蕭衍)의 친구인 도홍경의 시이다. 도홍경이 구곡산(九曲山)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했다. 이에 무제가 그를 불러내기 위해 산중에 무엇이 있어 나오지 않느냐고 물은데 대해 이처럼 답했다. 그가 산중에 들어가 버리자 아쉬워하면서도 사람을 보내 자주 자문을 구했기 때문에 산중재상으로 부르기도 했다.

조선조 역관 김한태에게 서재는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었다. 김한태는 범중엄이 남긴 아래의 말에 기원을 두고 서재를 '자이열재'라 이름 붙였다. 옛 어진 사람들의 마음으로 그와 같은 어진 사람을 본받아 인(仁)의 정치를 해야 함을 설파한 글이 바로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이다. ‘선 천하지우이우(先天下之憂而憂) 후 천하지락이락(後天下之樂而樂)의 마음을 지녀야 할 때이다(천하 사람들이 근심하기에 앞서 근심하고 천하 사람들이 즐긴 다음에 즐긴다)’ 라는 의미와 상통한다.

 '이열(怡悅)은 즐겁다, 기뻐서 좋아한다는 뜻이다. 마음(?)이 점차 나(台)와 같아져서 '기뻐할 이(怡)’자가, 마음(?)이 바꿔져(兌) 기쁘다는 의미가 ‘기쁠 열(悅)’자가 됐다. 서유구는 무릎을 치며 자신의 서재를 '자이열재(自怡悅齋)'라 이름했다. 산중에 숨어 살며 구름이나 즐기며 사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까.

그는 34세인 1797년 순창군수로 일하면서 농업정책을 마련했고, 70세에 전라도관찰사에 부임했다. ‘정조지 ’ 요리 복원을 시작하면서 순창에서 충격을 받는다. 오랜 가뭄과 기근, 벼슬아치들의 횡포로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며 삶의 방향을 잡았으며, 1798년까지 순창군수로 일했다. 전시관 1층엔 ‘정조지’의 전통음식을 체험해보고 교육하는 쿠킹클래스를 운영, 완산10미 식자재를 활용, 전통음식을 현대화한 다양한 레시피를 체험할 수 있다. 이열(怡悅)한 전주 한옥마을이 되기를 바라며, 지역 문화자원을 풍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