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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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화당(棣華堂)

체화당(棣華堂)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義兵將)으로 전공을 세운 이재(怡齋) 서사진(徐思進)의 아들 삼 형제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재실이다. ‘체화’는 『시경(詩經)』「상체(常棣)」에 출전을 둔 것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의미한다.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 9[산격동 913]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창건된 재실.

체화당(棣華堂)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義兵將)으로 전공을 세운 이재(怡齋) 서사진(徐思進)의 아들 삼 형제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재실이다. ‘체화’는 『시경(詩經)』「상체(常棣)」에 출전을 둔 것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의미한다.

서사진의 첫째 아들 서신(徐愼)[1585~1641]은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증직(贈職)으로 통훈대부(通訓大夫) 군자감정(軍資監正)을 받았다. 둘째 아들 서율(徐慄)[1606~1687] 은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셋째 아들 서업(徐)[1612~1676]도 손처눌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대구 지역의 이름난 선비들과 교유하였다.

체화당은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913에 있다. 연암산 산자락에 있는 마을이어서 연암마을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달성서씨의 집성촌이다. 달성서씨 문중에서 운영하던 서당 용담재(龍潭齋)와 일신재(一新齋) 등이 있었기 때문에 서당골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체화당이 있는 곳에는 원래 300년 정도 내력이 있는 달성서씨의 문중 건물과 서율의 남계정사(南溪精舍) 건물이 있었다. 1959년에 달성서씨의 문중 건물과 남계정사를 통합하여 새롭게 ‘체화당’이라는 이름을 붙여 중건하였다.

체화당은 정면 5칸, 측면 1.5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화악문(花萼門)’이라는 솟을대문이 있다.

체화당달성서씨의 재실로서 달성서씨 문중의 회합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체화당은 16세기~17세기에 달성서씨 문중에서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음을 보여 주는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