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여지승람(조선)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은 1486년(성종 17)에 완성된 인문지리서이다. 권1~2는 경도京都, 권3은 한성漢城, 권4~5는 개성開城, 권6~13은 경기도, 권14~20은 충청도, 권21~32는 경상도, 권33~40은 전라도, 권41~43은 황해도, 권44~47은 강원도, 권48~50은 함경도, 권51~55는 평안도의 인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머리에 그 도의 전도全圖를 싣고 이어 연혁沿革, 풍속風俗, 묘사廟社, 능침陵寢, 궁궐, 관부官府, 학교, 토산土産, 효자, 열녀, 성곽, 산천, 누정樓亭, 사사寺社, 역원驛院, 교량, 명현名賢의 사적, 시인의 산천이나 누정 등을 대상으로 주변의 풍광과 이를 보는 감흥을 읊은 시가詩歌인 제영題詠 등을 실었다. 이 중 풍속 편에서 다양한 형태의 민속놀이를 확인할 수 있다.
줄다리기: 줄다리기는 농경의식의 하나인 일종의 편싸움 놀이로 길쌈이라고도 한다. 대부분 정월대보름에 시행된다. 줄다리기 행사가 결정되면 양편은 각각 조직화되는데, 조직 상부는 대장(편장·줄패장)과 중장中將, 소장小將으로 구성되고, 애기장군이 추가되는 경우도 있다. 대장은 각 편의 총책임자로 행사의 진행을 지휘·감독할 뿐 아니라, 비용 충당에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마을의 유지가 선출되는 것이 관례이나 자원하는 경우도 많다.
줄다리기 장소에 도착하면 양편은 줄목을 끼우는 것으로 실랑이를 벌이게 된다. 암줄의 목줄에 수줄의 목줄을 끼우고 목나무로 고정시키는 것은 남녀의 성기 삽입을 상징하는 행위로 보이며, 이때 음란한 말들이 오가며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진다. 일단 줄목이 끼워지고 신호에 따라 줄다리기가 시작되면 풍물패와 양편 주민의 응원이 어우러져 한바탕 굿이 벌어진다. 승패는 한 번 당겨서 기준점을 넘어간 것으로 가리는 것이 원칙이나 세 번 당겨서 두 번 이기는 쪽의 승리로 결정하기도 한다. 고서古書에는 이긴 편이 풍년이 든다는 기록이 일반적이다. 구전되는 바는 서편(여성 편), 즉 암줄을 당기는 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신으로 말미암아 서편이 이기는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동편이 일부러 져 주는 사례는 없다고 한다. 한편 이와는 반대로 동편, 즉 남성 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특수한 사례가 없지는 않다.
삼척 오금잠제烏金簪祭: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마을의 수호신격인 오금잠신烏金簪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단오제이다. 오금잠놀이 또는 오금잠굿라고도 한다. 이 행사는 음력 4월 초부터 5월 단오까지 한 달간 무당 집단이 주도하는 마을굿 형태로 진행된다.
각종 기록을 종합해 보면 오금잠제는 금비녀 모양의 신체를 신격화하여 단오날 굿당에 모셔다 놓고 올리는 마을굿이었다. 이는 동해안 일대에서 나타나는 단오굿의 고형이다. 오금잠제는 18세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동해안 일대에 거행된 단오제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마을굿이었다.
오금잠제는 1993년에 오금잠놀이로 재현되었는데, 오금잠제 모시기(제례)─오금잠신굿(축원)─놀이굿(제수나눠먹기)─뒤풀이(화합) 과장으로 구성되었다. 이 민속 행사는 동해안 마을굿의 원형이며, 단오 문화권에서의 풍년 기원제이며, 고대로부터 전승된 왕신격이면서 서낭신이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에 오금잠신은 ‘백두옹白頭翁’이라는 갈야산葛野山 산신으로 변신하여 마을 주민들에게 위협적인 신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제의를 유지시키려는 무당들의 악령의식에서 생성된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오금잠을 남성 상징으로 추단하였고, 오금잠신이 물을 다스리는 신력을 지녔다고도 하여 풍년 기원의 무제임이 주장된 바 있다. 삼척 부사가 금하여도 향리들이 주도하여 오금잠제가 계속 되었다는 사실은 이들이 오금잠제를 통해 지역 내에서 나름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실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읍치성황사에서 오금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낸 전통은 최근까지 계승되어 1980년대 초까지 삼척의 읍치성황사(현재 성북동 성황당)에서 단오에 굿을 하였다. 이와 함께 무당들이 살을 풀어 주고, 복을 기원해 주며, 이에 주민들이 각종 물건을 봉헌한 전통은 내륙의 단오굿이나 해안지역의 별신굿 현장에서 무녀가 주민 개개인들의 1년 운세를 짚어 보고, 소지를 올려 주며, 액살을 풀어야겠다고 공수를 내려 주면 굿 말미에 액막음(용왕제龍王祭)을 지낸다는 점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오금잠제 전통은 집안 단위로 행해지는 산메기로 잔존하여 명맥이 유지되었으며, 마을 단위로는 내륙에서 미로 단오굿이나 근덕 선흥마을 단오굿과 같은 형태로 주변 마을을 아우르는 마을굿으로 전승되고 있으며, 해안 마을인 삼척 근덕면 초곡리와 궁촌리 등에서 단오에 즈음하여 2~10년을 주기로 마을 단위의 별신굿으로 계승되고 있다.
봉의산 축성놀이: 봉의산 축성놀이는 지금부터 700 ~800여 년 전 글안족과 몽고군이 침략할 무렵에 이 고장을 지키려고 산성을 쌓을 때 행하던 놀이를 재현한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봉의산성의 둘레는 2,463척, 높이는 열 척이라고 한다.
봉의산 축성놀이는 전체 네 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과장은 행진 시작(입성)으로 두 편으로 갈라 영기令旗를 앞세우고 행진을 시작한다. 농악대가 앞서 행진하면서 흥을 돋운다. 일꾼 차림에 짚신을 신고 머리에 수건을 맨 일행 50명 정도(각 25명)가 삽, 괭이, 망치, 도끼, 낫, 지게, 목도 등의 장비를 메고 <춘천아리랑타령>을 부르면서 입성한다. 제2과장은 작업 진행(축성)으로 농악을 울려 축성 작업 시작을 알리고 작업의 흥을 돋운다. 1조·2조 등으로 조를 나누고 돌 파내기, 목도질 하기, 돌 쌓기 등으로 구분해서 작업을 진행한다. 작업 중에 휴식을 취하면서 참 돌리기(담배 피우기), 춤 자랑 등 여흥을 곁들인다. 제3과장은 작업 완료(봉화)로 성 쌓기를 먼저 끝낸 편에서 환호를 하면서 봉화를 올린다. 진 편에서는 이긴 편이 봉화를 올리고 있는 동안 성 쌓기 마무리 작업을 한다. 성을 모두 쌓게 되면 이긴 편의 대장이 성 위에 올라가서 성을 완전히 쌓았음을 선언한다. 제4과장은 한마당놀이(산신제)로 미리 장만하여 차려놓은 제물로 산신제를 올린다. 성을 튼튼하게 쌓는데 부상자도 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드리고 이 고장에 항상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한다.
홍천 팔봉산 당굿: 팔봉산 당굿 놀이는 매년 음력 3월 15일과 9월 9일에 마을 주민들이 홍천 팔봉산의 제2봉 정상에 있는 당집에 모여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당굿을 말한다. 당집을 삼부인당이라고도 하는데, 김씨, 이씨, 홍씨 세 부인을 기리는 당집이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400년 전인 1590년부터 마을의 평화를 위해 기원을 해 왔다고 한다. 팔봉산 당굿은 크게 세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째 마당은 칠성신군과 후토신군에게 제사를 드리며, 둘째 마당은 세 부인에게 기원을 드린다. 셋째 마당은 무당들의 만신굿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김해 석전놀이: 1520년(중종 5)에 삼포(부산포, 염포, 제포)에 거주하던 왜인들이 난을 일으켰을 때 김해의 석전사들이 전라도까지 원정하여 왜구 토벌에 결정적인 활약을 하였음이 『동국여지승람』에 명시되어 전한다. 이렇듯 무기가 근대화 되지 못했던 시대에 전투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돌팔매질이 하나의 놀이로서 모습을 나타낸 것은 조선시대로 보인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보면 김해 지방에서는 매년 음력 사월초파일 무렵부터 마을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성의 남쪽 지역에서 온 마을 사람들이 좌·우부로 나누어 편을 가르고 깃발을 세우고 북을 치며 기상을 돋우고 돌을 던져 상대편을 공격하는데 마치 돌비가 오는 것 같았다고 한다. 사상자가 생겨도 승부가 가려질 때까지 싸웠다고 하며 음력 오월 단오에 그 절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말뛰기놀이: 말뛰기놀이는 제주도에서 주로 이루어진 민속놀이로 『동국여지승람』 및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영등굿’, ‘말뛰기놀이’라는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월 초하루에 제주도의 귀덕·김녕·애월 지방에서는 열두 개의 나무 장대를 세우고 신을 맞아서 제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긴 나무 장대 끝에 색채 비단으로 꾸며 말뛰기놀이를 한다. 이날밤에는 등불을 매달아 켜므로 이 제의를 ‘영등굿’이라고 하며, 2월 초하루에 시작하여 보름에 마친다. 곧 2월 초하루부터 15일 사이에 장간長竿을 세우고 신을 즐겁게 하였으며, 이때 말머리 같은 가면을 써서 말을 꾸미고 비단 안장을 채워 영등신을 모신 후, 놀이터로 와 흥겨운 한마당을 벌인다. 이렇게 하면 연등을 제사한 것이 되어 바다에 나가도 재난을 당하는 일이 없고, 각 가정에서도 초복제화招福除禍할 수 있다고 믿었다.
특징 및 의의
『동국여지승람』은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 및 사서인 『동국통감東國通鑑』과 더불어 조선 성종 때 이루어진 편찬 사업의 대표적인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각 지역별로 연혁은 물론 지리·교육·인물·풍속 등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특히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형성·전승시키며 향유했던 민속놀이의 유래를 일단을 확인할 수 있다. 옛 민속놀이에 대한 기록이 여느 분야의 기록에 비해 미미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동국여지승람』을 통해 충주 줄다리기·삼척 오금잠제·봉의산 축성놀이·홍천 팔봉산 당굿·김해 석전놀이·말뛰기놀이 등의 연행 양상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은 놀이의 전승 맥락을 이해하는 자료가 되고 있다. 관련 기록 정보를 통해 민속놀이의 재구·보존·계승을 고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